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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중)/연애오답노트

100일 연애 후 남친의 이별통보. 우린 왜 헤어지는 거죠?

by 무한 2018. 2. 6.

한 7년 전쯤인가, 당시 난 ‘채식’에 꽂혀서 채식주의자가 되기로 한 적이 있다. 두부를 주식으로 삼았으며, 콩고기를 주문했고, 신촌에 있는 채식주의자 레스토랑을 일부러 찾아가기도 했다. 채식에도 레벨이 있어서 유제품을 허용하는 레벨이 있고 ‘절대 채식’만을 하는 레벨이 있는데, 난 커뮤니티에 들어가서 글을 읽을 때마다 자극받아 ‘절대 채식’까지 추구하게 되었던 것 같다.

 

채식의 가장 큰 어려움이라고 하면 대개 고기를 못 먹는 거라 생각할 텐데, 사실 그것보다 매 끼니를 채식식단으로 꾸리는 게 더 어려웠다. 한 2~3주 정도는 나름 신경을 써가며 할 수 있었지만, 한 달쯤 지나니 몸이 건강해지는 것보다, 까다로운 메뉴 고르기로 인해 스트레스를 더 받는 것 같았다. 그래서 ‘하루 한 끼만 채식으로 먹기’를 하다가, 그것도 내가 전부 요리를 해 먹지 않는 입장에선 점점 부담스러운 일이 되어, 고기의 세계와 다시 부둥켜안곤 눈물의 상봉을 하게 되었던 것 같다.

 

아 잠깐만, 이렇게 채식을 예로 들어 놓으면 지금 채식을 하는 분들이 오해를 하실 수도 있는데,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건

 

-힘을 잔뜩 준 채 극단적으로 시도하면, 빠르게 지칠 수 있음.

 

이라는 걸 먼저 밝혀두도록 하겠다. 난 소설가 김훈의 인터뷰를 보고 ‘하루 두 시간 자전거 타기’를 한 적도 있는데, 내가 본래 라이딩을 아주 좋아하는 타입도 아니어서인지, 나중엔 자전거 끌고 나가는 게 무서워질 정도로 지치고 말았다. 걷기는 좋아하는 까닭에, 하루 30분~1시간 정도 산책하듯 걷는 게 나에겐 꼭 맞는 일이었다. 산책은 지치지도 않고, 꾸준하게 유지할 수 있었다.

 

 

1.챙겨주는 연애에 지친 남친.

 

물 떠다 주고, 젓가락 놔주고, 문 열어주고, 음식 잘라주고, 뭐 먹을 때 먼저 먹게 하고, 늘 데려다주고, 하는 일들에 대해 ‘매너’라고 말하는 여성대원들이 꽤 많은데, 경우에 따라 한두 가지 정도는 매너있는 모습이 될 수 있겠지만, 매번 저래야 하는 연애는 그냥 노동처럼 느껴질 수 있다.

 

한쪽이 일방적으로 희생하며 맹목적으로 다른 한쪽의 편의만을 생각하는 건, 연애라기보단 접대에 가까운 것 아니겠는가. 사연의 주인공인 P양은

 

“남친은 그냥 매너가 몸에 밴 사람 같았어요.”

 

라고 했는데, 아무리 이타적인 사람이라도 매번 저래야 한다면 의무만 자꾸자꾸 늘어나는 관계에 지칠 수 있다.

 

게다가 저런 매너를 보이는 건 보통 ‘너에게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다’는 마음으로 하는 노력인데, 그랬음에도 불구하고 ‘바라는 것들’이 늘어나면 상대는

 

‘이거 뭐야? 연애야, 봉사활동이야? 왜 나만 다 맞춰야 해?’

 

하는 생각까지를 하게 될 수도 있다. 데이트 시 헌신은 헌신대로 하는데 일상과 관련해서도 연락, 지인들과의 만남, 옷차림, 취미까지 지적받기 시작하면, 연애가 그냥 피곤하기만 한 것으로 여겨질 수 있고 말이다.

 

P양의 이번 연애에선, 저 지점이 가장 큰 문제가 된 것 같다. 남친은 자신이 생각하던 멋진 연애, 헌신하는 연애를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시작부터 전력질주를 했고, 그러다 보니 내가 극단적으로 채식을 하려다가 금방 지치고 만 것처럼 지친 것 같다. 거기에 더해 남친의 물리적인 헌신에 의존하게 된 P양은 정서적인 의존까지를 하고 싶어졌고, 그게 남친에게는 자꾸 의무와 지적만 늘어나는 연애로 느껴지고 만 것 같다.


 

 

2.잘못된 P양의 보답과 대처.

 

그러니까 P양의 경우, ‘O/X’의 좀 극단적인 결론을 내는 경향이 있다.

 

“(술자리에 간 남친과 연락 안 됨)연락을 왜 안 하는가?”

“(남친에게 연락이 어려운 이유를 들은 뒤)그럼 놀 땐 연락하지 마라.”

“(남친이 진짜 연락을 안 하자)그렇다고 답장도 안 하냐.”

 

저게 저렇게 딱 ‘해라/하지 말아라’로 나누어 결정하지 않아도 되는 건데, P양은 둘 중 하나의 결론을 내린 뒤 이후에 그 결론이 마음에 안 들면 그걸 뒤집곤 한다. 그게 P양 입장에선 좌충우돌하며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겠지만, 상대에겐 이랬다저랬다 하며 변덕을 부리는 걸로 느껴질 수 있다.

 

또, P양이 연락 문제로 상대에게 서운함을 느끼고 있을 때, 그 고민을 들은 친구들은 ‘서운한 게 있으면 남친에게 말하는 게 좋다’는 조언을 했다고 한다. 물론 혼자 서운함을 축적하는 것보다는 연인과 그 지점을 터놓고 말하는 게 좋은 방법이긴 하다. 하지만 그 이전에

 

-난 지금, 내 작은 심경변화까지 전부 남친 탓으로 돌린 채, 남친이 다 해결해 주길 바라는 것 아닌가?

 

라는 걸 분명 생각해 봐야 한다. 그것엔 내가 참거나, 이해하거나, 노력해야 하는 지점도 있으며 내 스스로 감당해야 하는 외로움도 포함되어있을 수도 있는데, 그런 부분은 전혀 생각하지 않은 채 그게 다 남친으로 비롯된 문제라고만 여기면 남친에게 이래 달라, 저래 달라 하는 주문만 하게 될 수 있으니 말이다.

 

더불어 P양은, 남친의 ‘매너와 헌신’에 대한 보답으로 어느 날은 남친이 손가락 하나 까딱 안 하게 하고는 자신이 모든 걸 다 베풀 듯 데이트하기도 했다고 하는데, 난 그러기보다는 차라리 평소에 서로를 돕는 식의 데이트를 하는 게 어땠을까 싶다. 예컨대 늘 남친이 수저 놔주고 물 떠다주고 음식 잘라서 먼저 먹여주는 걸 6일 동안 받고 나머지 1일은 P양이 다 해줄 게 아니라, 그냥 평소에 남친이 물 떠다주면 P양이 수저 놓고, 서로의 음식 잘라 조금씩 나눠서 맛볼 수 있게 하는 게 나았을 것 같단 얘기다.

 

P양 방식의 ‘6일 접대 받고 1일 접대하고’를 해버리면, 평소에 P양이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정해 놓은 ‘6일’의 기간에는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리고 P양은 남친이 “그거 그렇게 귀찮게 안 찾아봐도 돼~”라는 이야기를 하면 그 말을 고지식하게 해석해선 진짜 딱 안 찾아보는 걸로 끊어버리는데, 이 부분에서도 마찬가지로 ‘남친이 하라고 했다/하지 말라고 했다’라며 딱 두 가지로만 나눠서 생각하진 말았으면 한다. 이건 사실 ‘눈치와 센스’랑 관련 있는 부분이라 뭐라 말하기가 참 곤란한데, 여하튼 상대에게 당장의 ‘좋다/싫다’라는 대답만을 들어 좋다는 건 무조건 허용해주려 하고 싫다는 건 아예 끊어버리려는, 그런 극단적인 결론을 내진 말았으면 한다.

 

 

3.“재회가능성이 있다고 보시나요?”

 

P양은 이미 남친의 이별통보로 한 번, 그리고 P양의 재회요청에 남친이 ‘대답 없음’으로 의사표시를 한 걸로 두 번, 그리고 이어진 또 한 번의 재회요청에 남친이 확고한 대답을 하는 것으로 세 번 이별을 확인받았다.

 

그렇게 이별을 확인받고 P양도 행복을 빌어주며 이별을 받아들이는 것으로 결론까지 냈다면, 당장 또 카톡으로 몇 마디 해서 재회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보는 게 좋다. 특히 남친이 1mm의 여지도 남기지 않은 채 확고하게 대답했다면, 상대의 그 대답을 존중할 필요가 있다. 상대는 몇 번이나 자신의 선택을 거듭해서 P양에게 말해줬는데, 그 말은 그냥 무시한 채

 

-아직 못한 말이 많으니 마지막으로 대화라도 하자.

-내가 다른 사람 만나도 진짜 아무렇지도 않을 것 같냐.

-난 다시 연애하면 진짜 잘 할 자신 있다.

-마지막으로 잡아보는 거다. 아니라고 대답하면 좋은 추억이라 생각하겠다.

 

하며 혼자 장군멍군하면 결국 차단당하는 것으로 그 관계가 마무리될 수 있다.

 

헤어진 지금도 P양은

 

-내가 진짜 챙김을 바라는 피곤한 여자라서 헤어진 것인가? 아니면 상대가 마음 식었는데 그냥 이별 사유로 그런 핑계를 댄 것인가?

 

라는 고민을 하고 있는데, 그것 역시 ‘둘 중 누구 잘못?’이라는 너무 극단적인 답을 구하려 하진 말았으면 한다. 이건 쌍방과실로 보는 게 좋으며, 위에서 말했듯 ‘멋진 연애에 대한 판타지’를 구사하려던 남친이 지치고, P양은 남친의 헌신에 길들여지던 중 정서적인 의존까지를 하려 들다가 계속 불만족 하는 부분을 말하게 된 것이라 여기는 게 좋겠다.

 

더불어 P양은

 

“남친이 제게 너무 좋은 사람이라 정말 재회하고 싶습니다.”

 

라고도 했는데, 상대에 대한 평가는 ‘지금의 모습’까지를 종합해서 해야 한다. 연애 후반부 상대가 데이트를 귀찮아하는 모습을 보이고 이별통보 후엔 읽씹하는 모습을 보인 것까지 상대라고 생각해야지, 연애 초중반 전력질주 하던 남친의 모습만을 떠올리며 ‘재회하면 다시 그 헌신이 시작되겠지?’하는 기대로 재회만 바라면 곤란하다.

 

가끔, 재회 후 마음대로만 구는 상대를 견디는 걸 ‘이전 연애에서 내 실수에 대한 형벌. 참고 이해하고 노력해야 하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대원들이 종종 있는데, 그걸 견딘다고 상대의 헌신이 보답처럼 주어지는 게 아니라 더 막장인 휘둘림을 당하다 비참한 마지막을 맞이할 수 있다고 적어두도록 하겠다. 그러니 다시 만나주면 내가 다 참고 맞추겠다며 급하게 재회만 부르짖진 말자.

 

 

자, 오늘 준비한 얘기는 여기까지다. 노멀로그에 보내는 사연은 혼자 확인사살 다 해보고 차단당하기 직전에 보내기보다 갈등이 생겼을 때, 또는 처음으로 달라진 상대를 느꼈을 때 보내는 게 좋다는 얘기를 다시 한번 드리며, 다들 추운데 건강관리 잘 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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