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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중)/천오백자연애상담

이기적인 남자친구와 생각할 시간을 가지는 중입니다.

by 무한 2017. 5. 30.

우선 난, 이 관계를 ‘어쩌다 알게 된 오빠동생’ 사이 정도로 생각한단 얘기를 해주고 싶다. 그렇게 시작하며 뭘 좀 알아가다 사귀든 말든 했어야 하는데, L양은 ‘남자가 대시하면 일단 사귀고 보는 스타일’이었고, 상대는 ‘가능성 있어 보이면 일단 대시하는 스타일’이었다. 때문에 마치 게스트하우스에서 어제 저녁 바비큐 파티 할 때 만나 한 잔 하고, 다음 날 해장하다가 사귀게 된 듯한 관계가 형성되고 말았다.

 

그렇게 사귀게 된 후 상대는 이제 연인이 된 것이니 어서 여보 자기 쪽쪽 하며 지내기를 원했고, L양은 ‘내가 뭘 믿고 이 사람한테 순정을 바쳐? 잘 알지도 못하는데’하는 생각을 했다. 이러면 보통 얼마 안 가 헤어지기 마련인데, L양은 자신이 저런 태도를 취할 때 남자들이 열혈 사랑꾼이 되어 철벽을 공략하려는 듯 구는 것에 익숙한 사람이었고, 상대는 굳이 간판을 내리진 않은 채 다른 곳에 다리를 걸치는 것으로 해결하는 사람이었다.

 

 

 

저게, 내가 생각하는 이 관계의 근본적인 문제다. 연애란 케바케니 시작이 어떻든 사귀며 알아갈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반문할지 모르겠는데, 그럴 순 있지만 L양처럼

 

- 내 친구들 짓궂어서 오빠 소개해주기 안 내킨다.

- 오빠 친구들 보러 가는 건 내가평가 당하는 것 같아 싫다.

- 난 결혼할 생각 없다.

- 나랑 결혼할 것도 아닌데 왜 결혼한 상황을 가정해 얘기하는지?

 

라는 생각과 태도를 보이고 있으면, 필연적으로 서로를 알아가기 힘들어지며 알아가야 할 이유도 없어지고 만다. 저건 다른 건 생각하거나 꿈꾸지도 말고 그저 지금 당장 내 손바닥 위에서 열심히 충성만 하라는 것과 같은데, 그렇게 여윳돈 정도만 걸고 있는 듯한 태도를 보이는 L양에게 올인 할 상대는 없는 것 아니겠는가.

 

“제가 여태껏 만나왔던 남자들은 바보 같이 저만 보는 성격에 극사랑꾼인 스타일이었거든요. 일도 주변인도 팽개치고 저만 보는 스타일만 만나 와서, 지금 남자친구 같은 스타일은 어떻게 해야 되는 건지 모르겠어요.”

 

그 사람들에게 그런 장점(?)이 있었던 반면 쩔도록 집착하는 단점도 있어서 결국 헤어진 것이며, 우리끼리니까 하는 얘기지만 그 중엔 아직 결혼은 먼 미래의 이야기인, 군대도 안 다녀온 대학교 신입생도 있지 않았는가.

 

L양도 이제 곧 서른이다. 다 팽개치고 집착하는 여섯 살 연하남의 들이댐을 그저 ‘사랑 받는 기분이 들게 해주는 것’으로만 여기고 있다간 답이 없어질 수 있다. 나 좋다는 남자와는 일단 갑을관계가 형성되니 덜컥 사귀고, 그 후에는 상대에게 진정성 담긴 충성만을 요구하고 있다가는, 목적지 없이 무모하게 액셀만 밟는 사람들과의 만남이 되풀이 될 것이다. 파주 통일동산에서 드레그 레이싱 하는 차 옆자리에 100번을 타도, 레이싱 끝나고 나면 내려서 L양 홀로 집에 돌아가야 한다는 걸 잊지 말았으면 한다.

 

 

지금의 상대와는 끝내는 게 맞다. L양은 그가 헌팅술집에 다니며 거기서 여자들 번호를 추가해오고, 소개팅 어플로 다른 여자 만나고, 어느 날 자취방에 갔더니 여자 귀고리가 놓여 있는 걸 보며 그에 대한 신뢰가 0이 되었다고 하지 않았는가. 이유가 무엇이든 거기까지 갔다면 ‘완전한 믿음을 갖는 방법’이나 ‘마음 안 다치고 다시 잘 만나는 방법’을 찾을 시기는 이미 물 건너 간 것이니, 지금도 ‘한 번 붙잡아 보고, 붙잡았는데 아니면 말고’의 태도를 보이는 그와의 관계는 이쯤에서 정리하길 권한다.

 

“솔직히 남친 스펙이 저보다 훨씬 좋으니까, 주변에선 자꾸 저보고 참으라는데요.”

 

남친의 스펙이 좋은 건, 두 사람이 헤어지고 나면 L양과는 아무 관계가 없는 것 아닌가. L양이 참는 것으로 한 60년간의 미래가 보장되는 거라면 나도 그게 아주 나쁜 선택인 건 아니라고 하겠지만, 현 상황에서라면 6개월 이내로 정리될 것이 분명하다. 그는 이제 돈 쓰는 것도 아까운지 L양에게 자취방으로 와라가라 하고 있는데, 그걸 참고 견디며 6개월 더 만난다고 무슨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는 건지 곰곰이 생각해 보길 권한다.

 

 

끝으로 L양에게 하나 더 이야기해주고 싶은 건, 겪어봤는데 아닌 것 같으면 빨리 벗어날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연인과의 풀스토리를 지인들에게 이야기하기엔 자존심 상한다며 대충 각색해서 이야기 한 뒤 부적절한 조언을 듣고, 또 상대도 당장 끝내고 싶어 하는 건 아니니 일단 이어가다간 L양의 청춘을 모두 소진하게 될 수 있다.

 

사랑 받는 기분이 들긴 했지만 상대가 너무 집착해서 괴로웠던 이전 연애도 L양은 막 2년씩 이어가지 않았는가. 이번 남친과의 연애 역시 그가 거짓말 한 걸 들켜도 L양이 ‘솔직하게 얘기해줘서 고마우니 넘어가기로 했다’며 계속 만나다간 L양의 20대가 의심과 마음고생만 하다 끝날 수 있으니, 필요하다면 쓰리아웃 제도라도 운용해 결정하길 권한다. 아, 상대는 이미 식스아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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