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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중)/천오백자연애상담

그가 어장관리 했다는 건 알겠어요. 근데 왜 그랬던 걸까요?

by 무한 2017. 4. 8.

이십대 초반쯤, 나도 Y양의 썸남과 비슷하게 행동했던 형 하나를 본 적이 있다. 그 형은 자신이 스킨십을 좋아하는 편이라면서 같은 모임에 있던 여자들의 손이나 머리카락을 스스럼없이 만졌고, 장난을 핑계로 상대가 ‘관심’으로 오해할 만한 이야기들도 많이 던졌다. 그가 만약 Y양을 만났더라면,

 

“이상형이 뭔데? 진짜? 그럼 난데? ㅎㅎㅎ 근데 너 손 왜 이렇게 차?”

 

따위의 이야기를 하며 손도 잡고, 머리도 쓰다듬고, 본인 자취방 천장에 야광별 있는데 보여준다는 등의 장난도 쳤을 것이다.

 

 

 

당시 대부분의 여자들은 그 형을 ‘진지한 관계를 맺기 불가능한 치근덕쟁이’ 정도로 설정하고 피했다. 처음에야 ‘그러려니’하며 좀 받아주던 여자들도 있었지만, 받아주면 받아줄수록 얼굴을 만지려 들거나 팔짱을 끼려드니 아예 피해버리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그 형이 장난을 빙자해 벌이는 일들로 외로움과 심심함을 달랠 뿐이라는 걸 눈치 채며 많은 여자들이 거릴 뒀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성추행으로 신고를 해도 이상할 것 없는 일인데, 그때는 다들 어린데다 지금처럼 성추행의 개념이 디테일하게 정립되지도 않은 시기였고, 또 누군가는 그걸 유쾌한 장난으로 받아들이다 보니 그 형이 ‘원래 그런 남자’ 정도로만 여겨지며 넘어갔던 것 같다.

 

다행히 거의 대부분의 여자들은 그 형의 저급한 마수에서 벗어났지만, 타 지역에서 홀로 올라와 자취를 하던 L양은 그 마수에 걸려들고 말았다. 남자와의 교류가 거의 없던 L양은 상대가 하는 행동을 ‘남자가 관심 있는 여자에게 하는 행동’이라고 여겼고, 그가 자신이 먹던 숟갈로 밥을 먹여주면 거부하지 않고 먹었으며 외투를 입혀주는 것엔 감동까지 하고 말았다.

 

 

사실 그땐 아무도 L양과 그 형에게 그런 일이 있었다는 걸 몰랐다. L양이 내게

 

“나 그 오빠랑…. 근데 그 이후 사귀자는 말도 없고 다른 여자들에게 계속 그래서 속상해.”

 

라며 고민을 털어 놓아 알게 되었다. 그 형에 대한 마음이 점점 커진 L양은 진짜 그의 자취방에 야광별을 보러 갔고, 거기서 뭐 그렇고 그런 일이 있었다고 한다. 그 얘기를 들은 난 즉시 야광별을 주문했다는 건 농담이고, 여하튼 누가 봐도 수작인 게 분명한 일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다 보니, 상대에겐 ‘장난이었는데 어쩌다 잠시 선을 넘은 것’으로, 이쪽에겐 ‘진지한 관계까지 진입한 것 같았는데 이후 별 말 없는 것’으로 여겨지고 만 것이다.

 

 

사연의 주인공인 Y양의 경우 역시, 위의 사례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경험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상대는 ‘모든 여자에게 다 그러는 꾸러기’인데, 그걸 Y양은 ‘나에 대한 관심’으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Y양은

 

“하지만 상대는 다른 여자들에게 그러는 것보다 제게 더 적극적으로, 또 높은 수위로 그렇게 들이댔는데요?”

 

라는 이야기를 하는데, 참 허무한 대답일지 모르지만 난

 

“그게, Y양이 일단 다 받아주니까, 상대는 더 그래도 된다고 생각해 그랬던 것 같습니다.”

 

라는 대답을 해줘야 할 것 같다. 또 Y양은 자신도 이 관계가 잘 될 리 없는 걸 알지만 대체 그가 왜 그랬던 건가를 궁금해 하는데, 난 역시

 

“무슨 마음이 있어서 그랬던 게 아니라, 원래 모든 여자를 그런 식으로 대하는데, Y양에겐 얼굴을 쓰다듬고 그래도 아무런 부정적 리액션이 없으니 그냥 그 수위만을 계속 올려간 것 같습니다.”

 

라고 답해줘야 할 것 같다.

 

이런 경우라면

 

- 상대 차를 탈 일이 있었는데 상대가 내게 안전벨트를 매줬다. 대체 왜 그런 걸까?

 

라며 하나의 행위만을 두고 ‘나에 대한 그의 마음’을 알아내려 하기보다는,

 

- 그가 다른 여자들에게도 다 그러는 건 아닌지?

- 그 행위 이외에 그가 사적으로 연락하거나 만나자고 하는 일은 있는지?

- 딱 그 순간에만 과감해지는 스킨십 이외에 인간적으로 가까워지려는 시도를 하는지?

- 그와 내가 일상을 공유하며 수시로 대화를 나누고 있는지?

 

등을 살펴보는 게 좋다. Y양의 경우 그가 머리도 쓰다듬어 주고, 먹을 것도 먹여주고, 외투도 입혀주고, 팔짱도 끼고, 어깨동무도 한 까닭에

 

-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랬던 건지? 나를 이성으로 생각해서 그랬던 건 아닌지?

 

만을 알아내려 하고 있는데, 그 외의 부분에서는 단둘이 만나서 밥을 먹은 적도 없고, 상대와 즐거운 담소를 나눈 적도 없으며, 다른 사람 포함해 밥 먹기로 약속을 한 뒤에도 상대가 그 약속을 잊고 있었다는 것으로 미루어보아 ‘어장관리’라기보다는 ‘모든 여자에게 끼 부리는 남자’의 수작을 잠시 개인적인 관심으로 오해했던 것에 더 가까우니,

 

“그래도 그가 그 정도로 과하게 절 챙겼던 걸 보면, 혹시 어쩌면….”

 

이라며 심증만 자꾸 키워가지 말고 이쯤에서 미련을 툭툭 털어내길 바란다.

 

적어도 일주일에 세 번 이상은 연락을 하고 지내며, Y양과 밥을 먹거나 영화를 보거나 벚꽃놀이를 가고 싶어 하는 남자가 ‘Y양에게 관심이 있는 남자’라고 생각하면 꼭 맞을 것 같다. 무조건 Y양에게 관심이 있는 남자를 만나서 썸을 타거나 연애하라는 건 아니지만, 이번 상대의 태도는 ‘관심’이라기보다 ‘꾸러기의 끼 부림’에 가까웠으니, ‘관심’이라는 건 저런 형태로 나타난다는 이야기를 하는 거라 생각해줬으면 한다. 자 그럼, 고약한 냄새나는 차는 이쯤에서 미련 없이 보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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