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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중)/연애오답노트

남친과 재회하면 또 힘들 거 아는데, 다시 사귀고 싶어요.

by 무한 2016. 12. 5.

안녕 채림씨. 채림씨 사연을 읽다보니까, 사연엔 연애보다 더 심각한 문제들이 담겨있네. 이건 당장의 기쁨과 쾌락을 좇다 스물한 살이란 그 지점에서 마침표를 찍어버릴 수도 있는 문제인데, 그러면 앞으로 대략 여든까지의 채림씨 인생엔 후회만 남을 수 있거든.

 

채림씨는 주변에 물어볼 곳도 없고, 또 누가 조언을 해주는 것도 아니라서 그냥 그 자리에 너무 오래 서 있었던 것 같은데, 거기에 어떤 문제가 있으며 왜 돌아나와야 하는지 오늘 같이 살펴봤으면 해. 자 그럼, 출발!

 

 

1. 사회의 무서움.

 

스무 살 넘어 사회에 나오면 이제 마음껏 자유를 누리며 어른흉내 내도된다고 생각하겠지만, 사실 그게 좋은 것만은 아니야. 권리가 느는 만큼 책임도 늘고, 간섭을 받지 않는 만큼 직접적으로 위험에 노출되며, 이젠 부모님께 말해도 부모님이 해결해 주실 수 없는 일들이 대부분이 되는 거거든.

 

학창시절엔 지각하면 혼나고, 결석하면 선생님과 상담하고, 사고를 치면 근신이나 정학처분을 받는 정도였지만, 사회에선 그 정도로 끝나지 않아. 당장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그냥 놀기만 한다고 누가 혼내지 않기에 그게 자유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결국 그때 아무 것도 하지 않은 것에 대한 책임은 ‘미래의 나’의 몫이 되는 거거든.

 

그냥 뭐 살다보면 나중에 어떻게든 되는 게 아니야. 늪에 빠진 듯 상황은 점점 나빠지기만 하고, 미래로 미뤄두며 산 ‘오늘’들이 미래엔 눈덩이처럼 불어나 채림씨의 목을 조를 수도 있어. 일단 살아지는 대로 살며 나이를 더 먹는다고 해서 무언가가 더 좋아지진 않아. 정말 무서운 건, 그냥 그렇게 살다 늙어 죽을 수도 있다는 거고 말이야.

 

당연히 지금은 막 써도 될 만큼의 시간이 남아있는 듯 여겨지고, 아직까진 뭐 해보다가 힘들면 그냥 부모님께 기대면 되니 그 ‘살아내는 것’의 힘듦이 피부로 느껴지진 않겠지. 때문에 현재의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 건지를 모르는 게 전부 채림씨 탓은 아니야. 하지만 가까운 시일 내에 이 부분에 대해 정말 진지하게 고민해 보지 않으면, 분명 누가 혼내지도 않았고 독촉한 적 없음에도 불구하고 한 번에 문제들이 몰려올 수 있어.

 

- 이제는 네가 그렇게 살아온 것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때야.

 

라는 이야기라도 듣는 것처럼, 과거의 자신이 함부로 허비해버린 것에 대한 책임을 한꺼번에 져야 해. 당연히 후회되고 눈물도 나겠지. 절망이 찾아올 거고, 다른 곳으로 도피하고 싶은 마음이나 누군가가 좀 도와줬으면 하는 마음도 들겠지. 그런데 그런다고 해서 해결되는 건 아무 것도 없고, 그때에도 늘 살아오던 관성으로 계속 그렇게 살면, 그것 역시 ‘미래의 나’의 몫이 되어 점점 더 괴로워져 갈 수 있어.

 

학교 안 다녀도 돼. 무슨무슨 교육원 안 다녀도 돼. 회사 역시 안 다녀도 돼. 알바 안 해도 돼. 그냥 놀아도 돼. 연애 시작해 남친과 맛있는 거 먹으러 다니며 즐겨도 돼. 용돈 정도는 아직 부모님이 주시잖아. 남친이 받아오는 알바비, 한 달 벌어 한 달 같이 쓰고 돌아다녀도 돼. 당장은 크게 문제될 거 없고, 부모님의 잔소리만 피하면 누가 혼내지도 않아.

 

그런데 그렇게 산 것에 대한 책임을, 미래의 채림씨가 반드시 져야 하는 순간이 오거든. 그래서 무서운 거야. 채림씨는 당장 자동이체로 빠져나간 줄 알았던 통신요금이 안 빠져나가서, 올해 1월부터 지금까지의 요금이 한꺼번에 나온다고 하면 멘붕에 빠질 수 있잖아. 당장 그 돈을 낼 수가 없는데다, 알바자리를 찾아 돈을 번다해도 그렇게 번 알바비의 반 이상을 통신요금으로 내야 하니 말이야.

 

뭐, 통신요금이야 몇 달 치 밀렸다고 해도 급히 돈을 마련하면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이니 그냥 잠깐 속상했다 말 수 있어. 하지만 이십대를 그냥 살아지는 대로 살아오기만 한 책임을 삼십대에 져야 한다면, 그땐 절망과 참담함이 분명 옆에 있을 거라는 걸 잊지 말았으면 좋겠어.

 

 

2. 지금까지 사귀어 온 것을 근거로 한 미래 스케치.

 

채림씨와 남친은 근 1년을 사귀었는데, 그 ‘1년 연애’에 대한 성적표를 잠깐볼게.

 

- 채림씨가 모아 놓았던 돈 다 씀. 청약저축도 깨서 전부 소비함.

- 싸우는 게 심해져 이제 싸우면 경찰까지 부를 정도가 됨.

- 남친이 채림씨에게 담배를 알려줘 이제 담배도 피우게 됨.

- 고시텔, 옥탑방, 반지하 등으로 옮겨다니며 동거함.

- 그 와중에 유기견까지 입양해 현재 죽을 지경이라고 함.

- 이젠 싸우다 폭력을 쓰기도 하고, 둘 중 하나가 집을 나가기도 함.

- 남친이 SNS로 다른 여자와 연락함.

 

이런 상황이라면, 난 둘 중 하나가 신의 음성을 들어 교화되거나, 아니면 로또 1등에 당첨되는 행운이 따라주지 않는 이상 이제 남은 건 신용불량자가 되는 일이라고 생각하거든.

 

“남친이랑 결혼에 대한 얘기도 했어요. 결혼할 때가 되면, 둘 다 아기를 위해서 담배 끊자고.”

 

지금 결혼이랑 아기가 중요한 게 아니야. 결혼한다고 상황이 바뀌는 거 아니고, 아기가 태어난다고해서 아기가 문제를 해결해주거나 마냥 행복만 가져다주는 게 아니거든. 좋은 마음으로 시작했던 ‘유기견 입양’의 결과가 어떤지를 봐봐. 걔를 처음 데려왔을 땐 간식도 사주고, 집도 마련해주고, 옷도 입혀줬겠지. 근데 두 사람 다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기도 벅차다보니, 이젠 유기견이 그냥 짐이 되고 말았으며 ‘유기견 때문에 죽을 지경’이 되었다고 채림씨가 그랬잖아.

 

둘은 그저 마냥 긍정적으로만 생각했던 결혼이, 그리고 육아가, 나중에는 역시나 그것 때문에 ‘죽을 지경’인 상황이 될 수 있는 거야. 나중에 식당 하나 마련해서 같이 일하고 같이 퇴근하고 뭐 그러는 거 좋아. 좋은 계획이야. 이왕 계획을 세우는 거면 그 식당 건물도 구입해버려. 식당이 있는 빌딩을 사. 그러면 조물주와 어깨를 나란히 한다는 건물주가 될 수 있잖아.

 

건물주가 되어서 세 받으면서, 아이에겐 넓은 세상을 보여줘야 하니 세계여행 다니고, 또 흙을 밟고 마당이 있는 집에서도 살 필요가 있으니 지방에 별장용도로 전원주택도 하나 지어. 그래서 주말이면 거기 가서 여유를 즐기면 좋잖아. 아니, 사는 김에 요트도 하나 사. 괜찮아.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다 사. 다 사겠다는 계획을 세워. 어차피 실현가능성이 낮다는 점에서는 별 차이가 없으니까, 꿈이라도 크게 가져보는 거지 뭐.

 

채림씨의 미래에 대해 내가 일부러 저주 같은 걸 하려고 이러는 게 아니라, 둘의 희망사항이 아닌 둘의 발자취를 근거로 미래를 그려보면 결과가 그렇거든. ‘어떻게든 되겠지’하는 생각으로 일단 대출을 받거나 카드를 긁어서라도 당장 뭔가를 하려하고, 그러다 몇 달 지나도 상황이 나아지지 않으면 그땐 서로를 탓하며 싸우게 돼. 싸우다 또 사네마네 하면서 누가 집을 나가게 되고, 그런 일이 반복되면 그 총체적인 실패 앞에서 결국 이상과 현실엔 큰 차이가 있었다는 걸 깨닫게 돼.

 

채림씨와 채림씨 남친처럼 연애한 사람이 지구상에 이미 수도 없이 많았는데, 대부분은 저 패턴대로 흘러갔어. 그래서 난 채림씨의 연애를 불안하고 두렵게 생각하는 거야. 그 끝엔 절벽이 있거든. 코앞만 보며 직활강의 스피드를 즐기며 내려가면 결국 절벽을 만날 텐데, 그때 과연 두 사람이 무얼 어찌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보면 암담해. 이대로라면 코앞에서 낭떠러지를 마주하게 될 순간은 피할 수 없을 테니까, 그때가 되어서야 겨우 고민을 시작하지 말고, 지금부터 진지하게 생각해 보길 권할게.

 

 

3. 남친 부모님, 채림씨 부모님.

 

부모님이라고 해서 자식들의 연애나 결혼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어딘가에서 완벽하게 배운 게 아니잖아. 또, 당연히 본인들의 자녀문제니 신경을 안 쓸 수는 없으시겠지만, 간혹 그냥

 

‘아, 이렇게 사귀다가 우리가 허락하면 결혼해서 사는 건가보다.’

 

라고 생각하시는 듯 너무 태평하게 ‘자유방임’의 정책을 펴시는 경우도 있어. 드물게는, 어떻게 되든 말든 별 관심이 없거나, 그냥 누구라도 좀 데려가만 주면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고 말이야.

 

난 채림씨 남친 부모님께서,

 

- 그냥 누구라도 좀 데려가면 주면 다행.

 

이라는 마음을 좀 가지고 계신 거라 생각해. 이게 참 그렇게 쉽게 허락하고 이런 상황을 진지하게 혼사로 엮으면 안 되는 건데, 보통의 경우보다 너무 쉽게 허락하셨어. 어쩌면 여기다가는 밝힐 수 없는 남친의 핸디캡 때문에 그러셨을 수도 있는데, 아무리 그래도 둘이 어떻게 살 것인지는 좀 내다보신 뒤에 뭔가를 진행하셔야지 그냥 지금 둘이 결혼하겠다니 결혼시키는 건 황당한 거지.

 

“그래, 너희 열심히 잘 살아봐라.”

 

그러니까 이게, 둘의 인생이 걸린 건데 그냥 막 맹목적으로 축복의 말만 해줘서는 안 되는 거거든. 남의 결혼이면 주례사 읊듯 축하해줄 수 있지. 그렇게 결혼해서 어떻게 되든 그건 그쪽 문제니까. 근데 이건 그분들에겐 아들의 인생이 걸린 문제잖아. 채림씨도 상대 부모님이 허락을 하시니까 이걸

 

- 우리는 인정받은 관계이며 이제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 일만 남은 것.

 

이라고 단순하게만 받아들인 것 같은데, 이건 진짜 이대로 덜컥 결혼이라도 했다간 피눈물만 흘리며 살게 될 수 있어. 그러니 남친 부모님이 결혼 허락했다고 이제 채림씨 부모님만 설득하면 끝나는 거라 생각하지 말고, 채림씨 스스로 생각을 꼭 해봐야 해. 진짜 결혼하는 게 맞는 건지 아닌지를 말이야.

 

채림씨 부모님의 경우는 ‘자유방임’에 가깝다고 할 수 있어. 아직 더 관심을 가지고 돌봐주시며 이끌어주셔야 하는데, 채림씨가 너무 강하기도 한데다 부모님도 자유롭게 놔두려고 하시니, 일단 원하는 걸 들어주시곤 나중에 수습이 안 될 때 도와주시려 하거든. 지금 필요한 건 믿음과 격려가 아니라 조언과 지도인데 말이야.

 

그렇기 때문에 채림씨와 남친은 아직 서로를 많이 겪어보지도 못한 상황에서 결혼 이야기를 하게 되었고, 거기다 남친 부모님의 빠른 허락과 채림씨 부모님의 자유방임이 조합되어 놀랍게도 ‘결혼’이 현실화 된 것 같아. 다만 채림씨 부모님께서는 완전히 마음을 놓을 수 없으시기에

 

- 앞으로 1년 동안 너희가 안 싸우면 결혼시켜주겠다.

 

라고 조건을 걸어두신 거고 말이야. 어쩌면 당장 결혼을 반대하면 채림씨가 엇나갈 수 있다는 걸 잘 아시기에, 일단은 조건부 허락을 하신 뒤 그 연애가 저절로 붕괴될 시간을 벌어두신 걸 거라 나는 생각해.

 

채림씨는 부모님께도 못한 이야기들을 내게 털어 놓았는데, 나랑 아무리 친해지고 가까워지고 서로를 위하는 사이가 되더라도, 채림씨 물에 빠지면 난 안타까워하며 119에 신고하는 정도겠지만 채림씨 아버지는 곧바로 채림씨 구하러 뛰어드실 거거든. 그러니까 지금처럼 부모님께 대부분 감춘 채 ‘승인’ 정도만 받아내려 하지 말고, 부모님을 믿고 꼭 털어 놓을 수 있었으면 해. 채림씨 사연을 다 읽은 내가 보기엔, 채림씨 물에 빠졌을 때 남친도 물로 뛰어들진 않을 것 같거든. 그러니까 꼭, 부모님과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해보길 권할게.

 

 

조언이나 충고를 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기에 그저 혼란스러우며 방황만 계속하게 될 땐, 1년 후, 3년 후, 5년 후에 채림씨가 뭘 하고 있을지를 한 번 생각해 봐. 그땐 어떤 모습이고 싶은지도 상상해 보고 말이야.

 

그렇게 상상한 모습에서 지금의 현실을 돌아보면, 이렇게 살 경우 그 모습에 도달할 수 있을지 없을지가 대략이라도 보일 거야. 대개 오늘까지 하지 않거나 미뤄둔 일은 내일도 그렇게 되기 마련이거든. 그러면 1년 후에 어땠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채림씨의 희망사항은 그때도 계속 희망사항으로 남아있을 수밖에 없는 거잖아.

 

그리고 연애를 시작하면, 이제 결혼만 남은 거라 생각하며 즐기지만 말고,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를 봐. 상대가 화낼 때, 짜증낼 때, 귀찮아 할 때는 어떤 모습인지도 보고, 상대가 채림씨에게 실망을 주는지, 아니면 희망을 주는지도 잘 살펴봐. 좋은 말인지 나쁜 말인지를 알려면 타봐야 아는 것처럼, 사람도 겪어봐야 아는 거잖아. 난 일단 채림씨에게 담배를 가르쳐준 게 남친이라는 것만으로도 낙제점을 줄 것 같아. 채림씨의 여동생이, 채림씨의 딸이 지금의 남친과 똑같은 사람을 만나 채림씨와 똑같은 연애를 하고 있다면, 채림씨는 어떤 이야기를 해줄 것 같은지도 꼭 한 번 생각해 봤으면 해. 그럼 부디, 현명한 선택을 하길 바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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