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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완료)/솔로부대탈출매뉴얼(시즌5)

다시 사귀자는 말은 없이 계속 연락하는 구남친 외 2편

by 무한 2016. 10. 19.

난 어릴 적 살던 동네에 찾아가, 놀이터에서 그네를 타며, 예전에 살던 집을 바라본 적 있다. 그렇게 놀이터에서 놀고 있으면 엄마가 창문을 열고 들어와서 밥 먹으라고 부르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고, 현관에 세워져 있던 내 자전거에 대한 기억, 그리고 멀리서 온 편지를 기다리며 수시로 우편함을 열었던 기억도 났다.

 

내가 살던 집은 뒤편 발코니의 오른쪽 끝 창문이 잠기지 않았는데, 그걸 고치지 않았는지 여전히 그대로였다. 집에 가족들이 아무도 없는데 내게 열쇠도 없을 때, 난 그 창문을 통해 집에 들어가곤 했다. 그때의 기억이 떠올라 다시 한 번 그 창문을 열고 넘어 들어갔다면, 아마 난 주거침입으로 3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지지 않았을까.

 

이처럼 부동산에 대해서는 내가 10년을 살았든 잠깐 살았든 소유권을 잃었으면 무서운 법에 적용이 되지만, 연애에서는 그렇지가 않다. 헤어진 사이지만 상대에 대해 잘 아는 까닭에 상대의 가장 약한 부분을 자극해 스킨십 진도만 나가려 할 수 있고, ‘선택과 책임’에 대해서는 판단을 흐리게 만든 후 순간의 감정과 정에 호소하며 데이트메이트처럼 지내려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다고 해서 체포되거나 고소당하는 것 아니니, 가능성이 얼마나 되는지 찔러나 보는 사례도 많고 말이다.

 

첫 사연의 주인공인 S양 역시, 다시 사귀자는 말은 없이 계속 연락하는 구남친에게 흔들리는 중이다. S양은 ‘대체 그는 무슨 생각으로 이러는 것인지’를 알고 싶어 하며 혹시 조금이나마 재회할 마음이 있어서 그러는 건 아닌지를 묻고 있는데, 그것에 대한 이야기부터 해보자. 출발.

 

 

1. 다시 사귀자는 말은 없이 계속 연락하는 구남친.

 

정말 아무 짓도 하지 않을 테니 MT에 가서 잠시 쉬고 오자고 이야기하는 구남친의 행동을, 전문용어로

 

- 개수작

 

이라고 한다. 일단 거기까지만 가면 팔베개를 해주겠다느니 마사지를 해주겠다느니 해선, S양을 무장해제 시킬 수 있다는 생각으로 그러는 거라 할 수 있겠다.

 

헤어진 사이임에도 불구하고 만나면 손 붙잡고 다닐 수 있고, 또 만나고 헤어질 때 포옹을 해도 S양이 거부하지 않으니, ‘우리는 헤어진 사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함구한 채 기형적인 방향으로 관계를 발전시키려는 것이 그의 생각이라고 할 수 있다.

 

“저에 대한 마음이 전혀 없는 거라면, 이렇게도 하지 않을 텐데요. 분명 마음은 있는 것 같은데….”

 

마음이 있는 건 맞는데, 그 마음이 그 마음이 아니다. S양이 생각하는 마음이라는 건 ‘호감’이지만, 그가 가지고 있는 마음은 ‘욕구’라 생각하면 되겠다. 내가 혹 구남친과 만나 얼굴을 볼 거라면 낮에 보라는 이야기를 한 건 그래도 낮엔 그렇게까지 욕구를 드러내는 사람이 적기 때문이었는데, S양의 남친은 밤낮을 가리지 않는 걸 보니 내가 진 것 같다. 그가 그렇게, 점심 먹은 거 소화되기 전부터 혼자 불타고 있는 사람일 줄 나도 몰랐다.

 

S양은 현재의 그를 ‘그 시절 그 사람’으로 기억하며 대하는 것이겠지만, 안타깝게도 지금의 그는 가벼운 마음만 남은 전혀 다른 사람일 수 있다. 이 시점에서 S양은 ‘지금의 그는 어떤 사람인지’를 유의 깊게 볼 필요가 있다는 걸 잊지 말았으면 한다. 유효기간 지난 추억만을 내밀며 뭔가를 요구하는 상대에겐,

 

“고갱님, 헌 거 말고 새 거 가져오셔야 해요. 이건 유효기간 지나서 안 돼요.”

 

라는 이야기 정도만 해주자.

 

 

2. 정말 적극적으로 구애하던 남친이, 이별을 통보했습니다.

 

그러니까, 구남친에 대해

 

“옛날 같았으면 제가 조금만 삐쳐도 벌벌 기던 사람이….”

 

라는 이야기를 할 정도면, 내가 어떻게 돕기가 참 어렵다. 상대를 곤란하게 만들 때마다 상대가 어쩔 줄 몰라 하며 저자세로 화를 풀어주려 한다고, 그 강도를 점점 높여 상대를 압박하면, 결국 그는 이 관계가 자신에게 짐만 될 뿐이라는 생각을 하게 될 테니 말이다.

 

Y양은

 

“저도 회사에서 너무 힘들어서, 아 이렇게는 안 되겠다 싶었습니다. 헤어져야 저도 회사에서 살아남을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요. 제 마음도 그때 회사 때문에 너무 괴로웠던 상황이라, 전화로 엄청 싸우다가 헤어지자는 말을 하고 말았습니다.”

 

라고 했는데, 그래버리면 상대는 그걸 Y양의 한계로 보게 된다. 그냥 서로 좋아서 만나고 사귀는 이십대 초중반의 연애라면 그렇게 헤어졌다 다시 만나고, 또 헤어졌다 다시 만날 수 있겠지만, 진지하게 결혼까지 생각하며 만나던 중 갑질을 경험하고 헤어지자는 말을 들으면, 그 사람과 함께하는 미래까지가 잿빛으로 여겨지게 된다.

 

한 쪽의 스무 통 넘는 부재중 전화를 경험해야 하고, 퇴사 이야기가 나와 마음이 힘든 와중에 연락에 소홀하다는 지적을 들어야 하며, 나아가 너만 힘드냐 나도 힘들다며 헤어지자는 이야기를 듣는다면, 좀 더 노력하거나 맞춰봐야겠다는 생각보다는, 그 관계를 끝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는 얘기다.

 

Y양의 경우, 상대와 2년 넘게 사귀는 동안 자신의 집이 어디인지도 말해주지 않았으며, 가족관계도 알려주지 않았다. 이처럼 Y양에 자신에 대해서는 꼭꼭 감추거나 접어두고서, 상대에게는 헌신과 충성과 노력을 하라고 하니, 이러한 부분 역시 상대의 마음을 점점 식게 만드는 것에 일조를 했을 것이다. 이건 자신의 패는 하나도 보여주지 않으면서, 상대보고는 모든 패를 다 꺼내 보여 달라고 말하는 것과 같으니 말이다.

 

상대가 Y양에게 고백을 할 때 사람 엄청 많은 곳에서 무릎을 꿇었든 드러누웠든, 그렇게 해서 연애가 시작되었으면 Y양도 그 연애를 돌보고 보살펴야 한다는 얘기를 해주고 싶다. 자신은 불안하며 손해보거나 상처받고 싶지 않다며 다 걸어 잠그곤, 상대에게 확신과 비전과 헌신을 보여 달라고 하면 상대는 그 관계를 불공평하게 느끼니 말이다.

 

다음 번 연애에서는, 누가 더 아깝고 누가 더 손해를 보는 건지만 계산하지 말고, 또 남친으로 하여금 ‘벌벌 기도록’ 만드는 것에만 신경 쓰지 말고, Y양의 남친이 Y양의 남친다운 대접과 인정을 받을 수 있게 해줬으면 한다. 상대를 왕자님으로 여겨야 Y양도 공주님이 되는 거지, 상대를 몸종이나 하인 정도로 여기면 “나 안 해.”라는 반응이 돌아올 테니 말이다.

 

 

3. 남친의 여사친 문제로 계속 싸우다 헤어졌습니다.

 

매뉴얼을 통해

 

“상대의 책임감과 존중을 보세요.”

 

라는 이야기를 하는 건, 무슨 슬로건 공모전에 입상하고자 그러는 게 아니다. 코드가 정말 잘 맞든 아니면 함께 있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즐겁든, 상대에게 책임감과 존중이 없으면 그 관계는 모래 위에 지은 집과 같기 때문이다.

 

친한 여사친들을 포기할 수 없으며, 그 문제를 화를 낼까봐 여친에게 거짓말까지 하고, 나아가 여친과는 동네 돌아다니는 것도 힘들어 하면서 여사친과는 강릉에 가자느니 춘천에 가자느니 하고 있는 남친이라면,

 

“사요나라.”

 

하고 보내주는 게 몸과 마음과 정신에 큰 도움이 된다. 남친 생일에도 K양이 돈을 내고, K양 생일에도 K양이 돈을 내고, 남친 생일에 기껏 케이크 챙겨줬더니 뚱뚱하니까 살 빼라는 얘기가 돌아온다면, 역시나

 

“사요나라.”

 

라며 이쯤에서 굳빠이를 하는 게 K양의 청춘과 인생과 사후세계의 일들에까지 도움을 줄 것이다.

 

K양은 남친의 그런 행동들을 웹에 올린 후 누가 잘못한 건지에 대한 댓글이 달리면 그걸 남친에게 들이밀고, 나아가 남친이 졸업한 학교 대나무 숲에 올려 좀 더 객관적인 평가를 받겠다고 하던데, 그런 건 다 부질 없으며 갈등의 골을 깊게 만드는 일일 뿐이다. 다음 번 연애를 할 때에도, 절대 남친을 이상한 사람으로 만드는 것에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으려 하지 말길 바란다. 세상사람 모두가 K양 편을 들어준다고 K양이 이기는 게 아니다. 남친이

 

“어 그래. 그럼 안 이상한 남자랑 만나면 되겠네. 잘 가.”

 

라고 하면 모두 소용없는 것 아닌가.

 

그리고 하나 더. 누가 먼저 시작했는지는 자세히 모르겠지만, K양은 상대가 K양에게 ‘등신, 또라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고 했는데, 카톡대화를 보니 K양도 상대가 말하는 중에 끊고는

 

“개소리고.”

 

라는 이야기를 하는 걸 볼 수 있었다. 어쩌면 K양은

 

- ‘개소리’가 나쁜 말이냐 ‘또라이’가 나쁜 말이냐.

 

라는 걸 또 웹에 올린 후 사람들에게 평가를 받아 승부를 가리려 할 수 있는데, 누가 먼저 잘못했고 누가 더 잘못했는지를 가리려 하지 말고, 그런 건 애초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게 막길 권한다. 그렇게 거친 단어들을 쓰게 되는 기반에는

 

“짜증나.”

 

라는 말이 있기 마련인데, 다음 연애에선 애초에 저런 말이 등장하지 않도록 서로 주의하며 약속하길 권한다. 나 역시 연애 중이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저 말을 쓰지 않기로 했고, 근 10년째 지키고 있다. 언어만 순화 되어도, 많은 갈등이 저절로 봉쇄된다는 걸 기억해뒀으면 한다.

 

“헤어질 때 남친이, 저보고 제가 여자친구인 걸 떠나서 정말 괜찮은 사람이라고. 친구로라도 지낼 수 없냐고 하더라고요.”

 

그가 혹시 ‘여사친 수집가’라서, K양마저 ‘여사친’으로 만들려고 하는 건 아닐까 싶은 지점이다. 웃자고 한 소리고. ‘나 갖긴 싫고 남 주긴 아까운’ 사람을 모두 여사친으로 둔 채 필요할 때에만 관심과 애정을 확인하려는 그에게 ‘또 하나의 여사친’으로 남지는 말았으면 한다.

 

그는 사귈 때 K양이 찾아가고, 알아서 챙겨주고, 관심과 애정을 듬뿍듬뿍 줬던 걸 기억하며, 이제 K양이 ‘여사친’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호의와 친절을 베풀길 바라는 것 같은데, 소중한 K양의 청춘을 거기서 자원봉사 하느라 허비하진 말길 바란다.

 

 

한 살 더 먹게 된, 좋은 수요일이다. 예전엔 12시 땡 하면 밀려드는 친구와 지인들의 축하에 답장을 하느라 정신이 없었는데, 이젠 다들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그런 짓들은 잘 안 하는 것 같다. 그래서 새벽까지 안경점과 치과, 가전제품 판매점에서 온 문자메시지만 확인하곤 울다 잠이 들었는데(응?), 아침에 일어나보니 노멀로그 독자 분들의 엄청난 축하 메시지가 와 있었다. 아직 다 답을 못 드렸는데, 매뉴얼을 올리고 나서 바로 답장을 드리도록 하겠다. 그 외에 방명록과 댓글, 메일 등으로 축하를 해주신 분들께도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린다.

 

자 그럼, 다들 편안한 저녁 보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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