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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완료)/솔로부대탈출매뉴얼(시즌5)

애 같은 연하 썸남, 어려서 이런 걸까요?

by 무한 2016. 5. 20.

내 지인 중에 ‘자기 사정’만을 가장 우선으로 두는 지인이 있었다. 언젠가 내가 그 지인의 사진을 편집해서 준 적 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연락해

 

“전에 사진 줬던 거 있잖아? 그거 파일 가지고 있어? 그거 지금 올리려고 보니까 저장을 안 해놨네. 사진 좀 보내줘.”

 

라는 이야기를 했다. 뭐, 내가 집에 있으면 바로 보내줬겠지만 밖에 나와 있어서 저녁쯤에나 귀가해 찾아보겠다고 하니,

 

“나 지금 올리려고 했는데…. 언제 들어가는데? 더 일찍은 안 들어가고? 아…나 좀 급한데….”

 

라는 이야기를 했다. 난 이미 전에 사진을 전달했고 저장 안 한 건 지 잘못이며 급한 건 지 사정이지 내 사정이 아닌데, 나 때문에 자기 할 일을 못 하고 있다는 뉘앙스로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또 한 번은 어디다 내야 한다며 내게 몇 문장을 써주길 부탁했는데, 그걸 다 써준 뒤 며칠 후

 

“아…. 거기 내 전화번호 틀렸다. 뒷자리 잘못 썼네. 이것 때문에 연락 안 오는 거 아닌가? 네가 글 쓰면서 좀 봐주지…. 어떡하냐.”

 

라는 이야기를 한 적도 있다. 그래서 난 정말 진지하게 ‘얘는 소시오패스가 아닌가?’하는 생각을 한 적 있다. 무슨 일에서건 자기 본위며, 남들은 다 자기를 위해 존재하는 들러리인 줄 안다. 지 생일엔 여러 사람에게 축하 받고 싶어 하면서, 남의 생일은 언제인지도 알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 2008년쯤인가, 지 돈 아까운 것만 알지 남의 돈 아까운 건 모르는 것 같은 염치없는 모습을 보고는 연을 끊었다.

 

이런 내 지인을 예로 들어 J양의 사연을 다룰 생각이었는데, 적고나서 보니 잘못했다간 J양을 이상한사람처럼 보이게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 내 지인의 이야기는 그냥 ‘저런 사람도 있다’는 의미로만 받아들여 주시고, J양의 이야기는 아래에서 따로 해보기로 하자. 출발!

 

 

1. 연하남도 사람이야, 사람!

 

연하남이 친구들과의 술자리 파하고 들어가며 J양에게

 

“저 오늘 술 엄청 마셨어요. ㅎㅎ”

 

라는 카톡을 보내놓은 것에 대해, J양은 내게

 

“‘자기 술 많이 마실 걸 왜 나한테 말하지?’하고 생각했어요. 뜬금없이.”

 

라고 말했다. 이럴 땐 그냥 “헐. 얼마나 마신 거야?”라고 물어봐서 진행하면 되는 건데, J양은 상대가 자기 얘기를 좀 하면 ‘뜬금없는 이야기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럼 둘의 대화는 무조건 J양과 관련 되거나 J양이 나누고 싶은 주제로 이루어져야 하는 걸까?

 

연하남이 J양과 똑같은 태도를 보인다고 생각해 보자. J양이

 

“으으. 폰 고장 나서 고쳐야 해 ㅠㅠ 센터 왔는데 기판 갈아야한대. ㅠㅠ”

 

라는 이야기를 했을 때, 연하남도 이렇다 할 대답 없이 속으로만

 

‘그래서 어쩌라는 거지? 왜 폰 고장 난 얘길 나한테 하지?’

 

라고 생각할 뿐이다. 이러면, 둘에게 남은 건 ‘이도 저도 아닌 사이가 되는 일’밖에 없지 않을까?

 

‘상대가 만나자는 말 언제 하나, 상대가 나에게 사귀자는 말 언제 하나’에만 관심을 가질 게 아니라, 상대라는 사람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한다. 현재 J양은 전자에 더 관심을 둔 채 상대가 자신의 이야기를 하면 전자와 관련된 이야기들이 아니라서 실망하곤 하는데, 만나서 영화 열 편 보는 것보다 카톡이나 전화로 밀도 높은 이야기 삼십 분 나누는 게 둘의 관계에 더 도움이 되는 일이라는 걸 기억해두자.

 

 

2. 연하남도 휴먼이야, 휴먼!

 

J양은 ‘가끔 상대의 대답하는 텀이 너무 길다’고 내게 하소연 했는데,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 거라면 엑셀에

 

- 카톡을 보낸 횟수

- 선톡 한 횟수

- 전날 마지막으로 보낸 카톡에 대답이 없어도 다음 날 선톡한 횟수

- 카톡을 보낸 뒤 대답하기까지의 시간

 

등을 적어 정리해 보길 바란다. 그럼 저 네 가지 중 어느 부분에서도 상대는 모자라지 않으며, J양이 막연히 느끼는 불만과 달리 실제론 상대가 대화에 성실하게 참여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뭔가 내 예상대로 빨리빨리 진행되지 않는 것 같은 답답함을 느낄 땐, 상대가 잘못해서 이런 일이 벌어진 것 같다는 ‘상대 탓’을 하게 될 수 있다. 그 함정에 빠지면, J양처럼 아래와 같은 괴상한 불만을 가지게 될 수 있다.

 

- 상대가 밥 먹자고 했을 때 거절해 놓고는, 상대가 리드 안 하는 것 같다고 느낌.

- 상대가 저녁에 마지막으로 톡 보내고 아침에도 선톡 했는데, 내 톡에 빨리빨리 대답 안 한다고 느낌.

- 상대가 매일 충실히 대화에 임해도 ‘다른 애들한테도 다 이러나?’ 따위의 생각만 함.

 

이쪽이 더 좋아하든 아니든, ‘내 사정’만 생각하며 상대에게 불만을 갖는 건 이기적인 거다. 이쪽이 상대의 마지막 말을 듣고 대답을 안 하면 그건 상대의 말을 이해하고 대답 안 한 거니 괜찮은 거고, 반대로 상대가 그러면 ‘읽씹’인 것인가?

 

불공평하다. 내가 가장 당황스러웠던 건 상대가 모임 사람들과 놀러 가 있는 상황에서 J양은 상대의 답장이 늦다며 섭섭해 하고 서운해 하는 지점인데, 내가 아무렇게나 누워 웹툰 볼 수 있는 널널한 상황이라고 해서 상대도 그런 상황인 건 아니잖은가. 불만을 갖더라도 ‘상대의 사정’을 좀 생각해가며 가져야지, 오로지 내 입장에서만 생각하며 왜 상대는 내 맘 같지 않냐고 말하는 건 자기본위의 태도일 뿐이라는 걸 기억하자.

 

J양은 현재 상대에게서 사귀자는 말이 없다는 것 때문에 좀 짜증이나

 

“돌직구 날려 보려고요. 다른 애들이랑도 이렇게 노냐고. 기대도 받아주는 거냐고 물어보려고요.”

 

라며 따질 생각을 하고 있는데, 저것도 사실 좀 황당한 계획이다. 그럼 상대는 “누나도 아무 남자한테나 기대고 그렇게 놀아요?”라는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 아닐까? 연하남을 잠재적 어장관리자나 J양을 희롱하려는 사람으로만 보지 말고, 그냥 눈에 보이는 그대로 보길 권해주고 싶다. 빨간 안경을 쓰고 상대를 보면 상대가 빨갛게만 보이는 법이니 말이다.

 

 

3. 연하남도 닝겐(にんげん)이야, 닝겐!

 

20일부터 25일까지 둘은 한 마디도 안 했는데, 20일에 마지막으로 톡을 보낸 사람이 누군가. 상대다. 25일에 선톡한 사람이 누군가. 역시 상대다. J양이 상처 받지 않으려고, 또는 속지 않으려고 조심한다는 건 알겠는데, 이렇게 겨우 발목까지만 발을 담그고 있으면 상대 역시 더 노력할 이유를 찾을 수가 없는 거다.

 

아주 오래 전 매뉴얼에 소개한 적 있는, 어느 독자 분과 나의 대화를 잠시 보자.

 

상대 – 저기요.

무한 – 네.

상대 – 노멀로그 잘 보고 있어요.

무한 – 아, 감사합니다. ^^

(한참 시간이 흐른 후)

상대 – 원래 말이 별로 없으신가 봐요?

무한 – 네? 아니 그런 건 아닌데…. 하실 말씀 있으세요?

상대 – 아니에요.

 

저 대화에서 독자 분의 기분이 팍 상한 건 내 탓인 걸까? 내가

 

“어익후, 어떻게 이렇게 누추한 곳까지 찾아 주셨습니까. 영광입니다. 제가 도와드릴 일 있으면 힘닿는 데까지 최선을 다해 돕도록 하겠습니다. 아, 식사는 하셨나요? 뭐 드셨는지 궁금하네요. 오늘 날씨 좋죠?”

 

라며 모셨어야 하는데, 그러지 않아서 전부 다 망쳐버린 걸까?

 

친해지고 싶은데 딱히 할 말은 없고, 그래서 상대가 날 좀 다정하게 맞아주며 리드를 해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은 가질 수 있다. 내 경우 그랬다간 24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밤낮없이 여러 사람이 도움을 요청하는 경우가 많아 일부러 ‘용건만 간단히’를 목표로 하고 있긴 한데, 여하튼 그런 마음으로 기대를 가져볼 순 있지만 그렇다고 상대가 무조건 그걸 다 받아줘야 하는 건 아니다.

 

연하남도 사람이다. 휴먼이며, 닝겐이다.(응?) 자신이 평소 다정하게 대하고 관심을 표현해도, 상대가 뭐에 하나 기분 상하면 근 일주일간 말 한 마디 안 거는 사람이라면, 그런 관계에 혼자만 노력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할 것 아닌가. 상대 주변엔 ‘시험 잘 봤냐고 먼저 물어오는 여자’도 있을 텐데, 그런 사람 놔두고 굳이 ‘본인이 관심 받는 것에 더 마음을 쓰는 여자’와는 만나고 싶지 않을 거고 말이다.

 

난 면식이 생활화 된 까닭에 이 와중에 ‘라면 끓이기’의 사례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데, 라면을 끓이려면 100˚C의 온도로 3분 정도 끓여야 한다는 걸 기억하자. 그렇게 바짝 끓여야 짜든 싱겁든 먹을 수 있는 라면이 되는 거지, 100˚C의 온도는 위험하다며 20˚C의 온도로 15분 끓이면 망하고 만다. 불 피울 때도 스파크가 튀어 불이 붙었을 때 장작 더 넣어줘야지, 그때 얼마나 타나 보겠다며 뒷짐 지고 있다간 불이 꺼질 수 있다. 불씨만 남았을 때 우악스럽게 통나무 하나 넣는다고 해결될 일도 아니고 말이다.

 

 

정리하자면, 연하남이 애 같아서 그런 게 아니라, J양이 경계하느라 소극적으로 대하니 상대의 불길도 사그라진 거다. 불 붙었을 때 장작 더 넣었어야 했다. 물론 지금도 절대 늦은 건 아니다. 둘이 매일 연락할 수 있고, 만날 수 있고, 또 둘만의 의미가 담긴 일들을 함께할 수 있으니, 상대가 뭘 더 어떻게 해주기를 바라지만 말고 J양도 적극적으로 임하길 권한다.

 

앞으로 아래와 같은 행동만 좀 자제하며 만나면 될 것 같다.

 

- 답장 늦게 왔다고 이쪽도 늦게 답장 보내기.

- 상대가 완벽하게 호응해주지 않았다고 연락 안 하고 꿍해있기.

- 상대 답장하기 곤란한 시간에 톡 보내곤 답장 느리다고 상심하기.

- 카톡으로 매일 연락하면서 ‘근데 왜 전화는 안 하지?’라며 불만 갖기.

- 상대도 상대의 삶이 있는 건데, 다른 사람들과 교류하며 지낸다고 질투하기.

 

끝으로 하나 더.

 

“썸을 탈 때든 연애를 할 때든, 그렇게 기분 ‘팍’상해서 등 돌리면 안 됩니다.”

 

라는 얘기를 해주고 싶다. 특히 대화상의 문제가 없음에도 상대의 어느 태도에 기분이 상했다고 ‘대답 없음’으로 대처하는 건 정말 나쁜 습관이다. 훗날 연애 중 그래버리면 남친은 ‘왜 이렇게 된 건지도 모른 채 그냥 잘못했다고 사과해야 할 것 같은 분위기’에 질식할 수 있으니, 언제든 대립보다는 협력하는 쪽을 택하길 권한다.

 

자 그럼, 너무 덥긴 하지만 저녁엔 좀 나아질 테니, 다들 즐거운 불금 보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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