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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중)/커플생활매뉴얼

밀당을 해달라는 여친, 어쩌면 좋을까? 외 2편

by 무한 2016. 2. 22.

움베르트 에코의 부고를 듣고 이틀간 긴 글을 썼다가, 그냥 저장 해두었다. 쓴 글을 읽으면 읽을수록 고인에게 보내는 늦은 팬레터 같고, 최대한 감추려고 해도 여과 없이 드러나고 마는 팬심에 내 손이 오글거렸다.

 

그는 내가 참 사랑하는 작가였다, 정도로 적어두기로 하자. 난 그의 글을 읽을 때마다 그가 천 년을 산 듯한 사람처럼 느껴졌는데, 그런 그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으니 마음이 좀 이상하다. 편히 쉬시라는 말씀과 함께, 장미 한 송이와 담배 한 개비 드리고 싶다. 장미는 내 애정이고, 담배는, 굳이 얘기하지 않아도 에코가 미소 지으리라 생각한다.

 

에코는 세상을 떠났지만, 내 메일함에는

 

"사연이 많이 밀려서, 아니면 제 사연이 매뉴얼로 발행되기 부적합해서 다루시기 힘들면, 그냥 제가 끝에 한 질문에 대해 'ㅇㅇ'이라는 짧은 답장이라도 부탁드려요."

 

라며 도움을 요청하는 사연이 날아들고 있다. 그래서 이번 주부터는, 두 편씩 다루던 사연을 늘려 다섯 세 편씩 다루기로 했다. 부지런히 달려보자. 

 

 

1. 밀당을 해달라는 여친, 어쩌면 좋을까?

 

B군의 경우, 여자친구가 밀당을 해달라는 말은

 

"나에게만 집중한 채 집착하는 건 제발 그만하고, 오빠도 오빠 인생을 좀 살아."

 

라는 의미라고 이해하면 된다.

 

남자가 '이렇게 해주면 여자가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실제 그녀가 바라는 것'은 완전히 다를 수 있다는 걸 기억하자. B군은 '내가 쏠 테니 오늘 우리 만나서 한우 먹자'고 말하면 그녀가 좋아할 거라 생각하지만, 그녀는 오늘 고기가 먹고 싶지 않을 수도 있고, 그냥 좀 쉬고 싶을 수 있으며, 고기를 먹으면 B군이 또 술을 찾을 테니 그게 싫을 수 있다. 그녀가 원하는 건 오늘 만나서 B군이 쏘는 고기를 먹는 게 아니라, 따뜻하고 조용한 곳에서 같이 커피 한 잔 마시는 것일 수도 있고 말이다.

 

그런데 B군은, 그녀가 하는 말이나 그녀의 기분, 그녀의 생각에 대해서는 전부 무시한 채

 

'내가 이렇게까지 잘해주는데, 쟤는 이것마저 거절하네. 나에 대한 애정이 크지 않아서인가?'

 

하는 생각만을 하고 만다. 그런 서운함과 실망감에 빠져 그녀에게 비아냥거리거나, '싫으면 말든가'식으로 내팽개치는 얘기를 하거나, "내가 하자고 할 때 따라주면 참 예쁠 텐데 넌 안 그러네."식의 '돌려까기'를 할 때도 있고 말이다. B군의 사연신청서에는 '더 잘해주려 노력했다'는 말이 계속 등장한다. 난 B군에게 그게 무엇을 바라고 잘해준 것인지, '잘해준다'는 게 정말 그녀가 원하는 걸 해준 것인지 돌아보길 권해주고 싶다.

 

그리고 혼자 토라져 자꾸 실망하지 말고, 또 그 실망을 계속 상대에게 알리려 들지 말길 바란다.

 

"자기 또 말도 없이 자는 구나."

"나 보고 싶으면 어떻게든 허락 맡고 나왔겠지."

"자기가 나 자는 동안 내 생각을 했으면 카톡 하나라도 보냈을 텐데…."

 

저래버리면, 방법이 없다. 내가 만약 B군에게 밥 한 번 사고 나선 "근데 잘 먹었다는 얘기도 안 하네. 먹기 전에 한 건 그때 한 거고, 먹고 나서도 말했어야지.", "지나가는 말로라도, 다음에 네가 사겠다고 말하면 좋을 텐데. 넌 가만 보면 그런 말 할 줄 모르는 것 같아."라는 이야기를 하면, B군도 체할 것 같은 기분을 느끼지 않겠는가.

 

여친이 B군과 사귀는 건 B군에게 호감이 있기 때문이고, B군과 만나는 것에 그녀 역시 자신의 시간과 돈과 마음을 쏟고 있다는 걸 잊지 말길 바란다. 이런 그녀에게 계속해서 B군의 불만족만 전달하면, 두 사람이 함께 할 수 있는 일은 이별 밖에 남지 않을 것이다.

 

 

2. 유명한 남자와 카톡까진 했는데요.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뭐가 아무 것도 없는데 혼자 의미부여 하시며 자존심 지키려 하시면, A양 자신만 이상한 사람 될 수 있습니다. 상대가 A양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며, A양과 카톡을 한 게 두 사람의 첫 대화였다는 것을 꼭 다시 돌아보셔야 합니다.

 

다시 말하지만, 상대는 A양을 모릅니다. A양이 상대에게 선물을 하는 것으로 둘의 인연이 잠시 닿고 연락까지 주고받긴 했지만, 그에게 A양은 '처음 보는 사람'일 뿐입니다.

 

"저는 그에게 그냥 'One of them'인 것 같아요."

 

그게 이상할 것 없으며, 당연한 일이란 얘깁니다. 만약 그가 선물 하나 받고 갑자기 특별하게 A양을 대하며 만나자고 졸라댄다면, 오히려 그게 더 이상한 일입니다. 그래서 전, 그가 한 행동엔 전혀 문제가 없다는 얘기를 좀 해드리고 싶습니다.

 

"선물을 받은 그가, 정말 고맙다며 나중에 밥 한 번 먹자고 하더군요. 그런데 밥 먹자는 게 빈말일 수 있는 거잖아요. 진짜 밥 먹자는 얘기가 아니라, 그냥 인사치례로 하는 그런 말일 수 있는 거요."

 

그럴 땐 그냥 "우와, 정말요?" 정도로 대답하면 됩니다. 당연히 그와 밥은 먹고 싶은데 저게 '인사치례'로 하는 말일 수 있어 저 말에는 대답 안 하고 있다가, 한참 지나

 

"편한 시간으로 정해주세요. 안녕히 주무세요."

 

라고 말하는 게 더 이상한 겁니다. 다음에 상대가 연락했을 때에도, A양은 그가 묻는 말에만 대답하고, 이후 대화를 마무리 하고 맙니다. 그것에 대해 A양이 제게 뭐라고 하셨습니까.

 

"전에 꺼냈던 밥 얘기에 대해서는 묻지 않은 채, 일상적인 카톡을 보내오는 것에 기분이 상하더군요. 저만 주구장창 기다리고 보낼까말까 마음졸여했던 것에 자존심이 상했습니다. 그래서 '내가 구걸하듯 너와 밥을 먹지는 않겠다'라는 마음으로 얼른 마무리 인사를 하고 말았습니다."

 

미안하지만 그거, 섀도우 복싱이 확실합니다. 훅훅쉿쉿. 상대 입장에서 보면, 자신은 안부 물었는데 A양은 되묻지도 않고, 뜬금없이 잘 지내라며 대화 마무리하고 가버리는 사람처럼 보일 뿐입니다. 이런 일을 저지르고 난 후 A양은

 

"저는 참 배알도 없는 사람인가 봅니다. 사실 지금도 아쉽습니다. 이제 연락 올 일 없겠죠?"

 

라는 이야기를 하고 계신데, 또 연락이 온다 해도 문제입니다. A양은 자신의 속마음을 감추겠다는 이유로 이전처럼 이상하게 행동할 것이고, 상대는 그 모습을 보며 A양을 이상한 사람이라 생각하게 될 수 있으니 말입니다.

 

말을 안 하면 모를 수밖에 없는 겁니다. 그것도 난생 처음 보는 사람과 카톡으로 단 두 마디 주고받았는데 뭘 어디까지 알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 혼자 기대했다 혼자 실망하는 일은 그만 두시고, 원하는 걸 말하고, 하고 싶은 표현을 하시길 권합니다. 지금 A양의 모습은, 맥도널드에 가서 자리 잡고 앉은 채 '직원이 언제 날 발견하고 내게 와서 주문하겠냐고 물어보나 보겠어'라고 생각하는 사람의 모습과 같습니다. 가서 주문해야 햄버거를 받든 감자튀김을 받든 할 텐데, A양은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의 배고픔까지 분노로 환원해 복수할 기회를 노리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니 이제 말을, 하시길 권합니다.  

 

 

3. 결혼상대로의 확신이 없다는 남친.

 

우선, 'GO냐 STOP'이냐를 물으신다면 저는 'STOP'을 권하고 싶다고 적어두겠습니다. 그 이유는 상대가 부모님으로부터 정신적인 독립을 하지 못한 점, 그리고 J양의 이해와 배려를 악용하는 점, 본인이 결정하면 되는 문제에 대해서도 외부의 핑계를 대며 책임회피를 하는 점, 결혼을 하게 되면 문제가 될 것 같은 J양의 상황들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는 점 등이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지금 남자친구를 놓지 못하는 이유는, 남자친구는 저에게 성실은 하기 때문입니다. 결혼에 대한 확신은 없으나, 저를 사랑하는 게 느껴지고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걸 압니다. 하지만 이번 일을 겪으면서, 전 남자친구가 언젠가는 변할 것이라는 두려움과 공포가 생겼습니다."

 

'네가 당장 헤어지는 걸 못 견디는 것 같으니, 이별은 조금 유예하도록 하겠다'는 태도는 사랑이 아닙니다. 충격과 공포의 얘기가 될지도 모르지만, 저건 '동정'에 더 가깝습니다. 그는

 

"네가 나와 헤어진 뒤 혹시 이상한 남자를 만나게 될까봐 그것도 너무 두렵고 싫다."

 

라는 이야기도 하는데, 저것 역시 '사랑'이라기보다는 '염려'정도로 해석하는 게 맞습니다. 전 개인적으로 저런 염려가 그의 근자감(근거 없는 자신감)을 보여주는 예라고 생각합니다.

 

아직 이쪽을 사랑하는 연인을 유기할 때, 가장 먼저 걱정하게 되는 부분이 저 지점이기도 합니다. 그럴 땐 내가 헤어지자고 해서 죽는 것이 아닐까, 또는 나만한 남자가 또 없을 테니 이상한 남자 만나서 고생을 하게 되는 건 아닐까, 하는 부분들을 걱정합니다. 헤어지고 난 뒤에는 '쟤는 나 아니면 안 되니, 내가 다시 오라고 하면 언제든 내게 올 거야.'라는 생각을 하기도 말입니다.

 

J양은 지금의 남친이 그간 사귀었던 남자들과는 다르고, 또 지금의 남친이라면 그와 결혼해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확신이 있기에 이 관계를 붙잡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것 역시, 현재 그가 보여주고 있는 모습까지를 '그의 모습'이라고 생각하면 얘기가 달라지지 않습니까? 연애 초중반의 모습만을 그의 모습이라 생각하지 마시고, 지금 상대의 모습까지를 전부 포함해 생각하셨으면 합니다.

 

제가 '남친이 원래 나쁜 사람이었다'는 이야기를 하는 건 아닙니다. 남친이 그렇게 변하게 된 것에는 J양의 위험한 연애관, 그리고 결혼관이 큰 작용을 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다만 이번 글에서는 J양이 알고 싶어 하시는 게 'GO냐 STOP이냐. 그리고 GO라면 방법을 알려달라'는 것이었기에, 그에 대한 답만을 드리는 거라 여겨 주셨으면 합니다.

 

계속 더 만나며 '내 어떤 부분이 너에게 확신을 주지 못하는 거냐'라고 묻다가는, 자존감이 있어야 할 자리에 구멍이 생길 수 있다는 걸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상대는 그냥 '너와 결혼하기엔 내가 아까워서' 확신이 없다는 말로 밀어내는 것일 뿐입니다. 때문에 J양이 '확신을 갖지 못하는 이유'를 물으면 아무거나 그냥 J양의 약점이 될 수 있는 부분을 이야기 할 것이고, 그것으로 인해 J양은 미치기 일보직전까지 가게 될 수 있습니다.

 

이미 남친은 몇 가지 이유를 J양에게 이야기 한 것 같은데, 그게 J양에게 확신을 가질 수 없는 이유가 될 수 없습니다. 제가 보증할 수 있습니다. J양의 남친은 말 같지도 않는 것들을 핑계로 내놓고 있는 것일 뿐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그에게 확신이 없는 건 J양과 결혼까지 하기엔 자신이 아깝다는 생각이 있어서지, 진짜 J양에게 문제가 있어서 그런 게 아닙니다.

 

애정이 가득할 때 그가 했던 말들과 지금 그가 하는 말들을 비교해 보시기 바랍니다. 자신이 책임질 거라고 호언장담하던 것들에 대해, 그는 이제 J양에게 책임을 돌리며 빠져나가려 하고 있습니다. 그가 엄청 애틋하게 포장하는 그의 첫사랑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는 철저히 제한된 시도나 노력만 했을 뿐입니다. 그래놓곤 다른 사람의 핑계를 대며 아쉽고 아련하다는 식으로 말합니다. 저는 그가 J양과 이별하고 난 다음에도, 어딘가에서 또 누군가에게, '정말 사랑했지만 서로의 사정이 맞지 않아 헤어졌다'고 말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듭니다. 내려놓으시길 권합니다.

 

 

사실 오늘 다섯 편의 사연을 다룰 예정이었는데, 세 번째 사연에 대한 글을 계속 지우고 다시 쓰는 까닭에 세 편으로 줄이게 되었다.

 

글을 쓰며, '어디까지 얘기해야 할까'에 대한 부분을 많이 고민한다. 컴퓨터 부팅이 안 된다며 좀 봐달라는 지인이 있을 때, 보드에 끼워진 부품이 느슨하게 결합되어 부팅이 안 되는 것을 발견하곤 그것만 이야기를 해줄지, 아니면 부팅 후 그가 IE6을 쓰고 있으며 엄청난 애드웨어와 무심코 누른 '설치하시겠습니까 - 예'의 결과로 발생한 문제들까지 가지고 있음을 이야기할지, 하는 고민과 비슷하다.

 

세 번째 사연의 주인공 J양은 착하고, 아름다운 마음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사연을 읽으며, 길냥이들에게 밥을 주는 내 지인이 떠올랐다. 내 지인은 길냥이들에게 밥을 주기 시작한 후 2박 이상의 여행을 간 적이 없다. 자신이 밥을 주지 않으면 길냥이들이 굶을까봐 그게 마음에 걸려 그러는 것이며, 때문에 애초에 멀리 나갈 생각을 잘 하지 않기도 한다.

 

지인의 행동을 감동적으로 보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아니면 미련한 것으로 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난 후자 쪽에 마음이 더 기운다. 무언가를, 또는 누군가를 사랑으로 보살피는 것도 좋지만, 그것 때문에 스스로를 돌볼 수 없을 지경이라면, 그건 분명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J양을 바라보는 내 심정이, 길냥이 보살피는 지인을 바라보는 내 심정과 같다. 외부의 대상만을, 또는 미래의 행복만을 위해 '지금, 여기에 있는 나'에게 소홀하지 않았으면 한다. 상대와 결혼하면 행복한 결혼생활이 가능할 것 같기에 지금 상대가 날 유기하려 해도 매달리는 건, 앞뒤가 안 맞는 일이며 오로지 나중 일에만 모든 기대를 건 채 하는 헛발질일 뿐이다.

 

"제 자존심은 얼마든지 버릴 수 있습니다."

"헤어지는 것만 아니라면 어떤 것이든 감수할 수 있습니다."

 

라는 얘기는, 그저 미련한 말에 불과할 수 있다. 

 

당장의 이별을 막아 J양의 평생 행복이 보장되는 거라면, 나라도 같이 가서 삼고초려를 하든 삼보일배를 하든 해줄 수 있다. 하지만 그게 아니기에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니, J양은 계속 해서 상처 받고 있는 자신부터 먼저 좀 돌보길 권해주고 싶다. 무작정 뭐든 다 견디려고만 하지 말고, '나는 이런 대우를 받으면 안 되는 사람이야. 누구도 날 이렇게 대우하지 못 하게 할 거야'라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지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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