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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중)/연애오답노트

그는 왜 갑자기 이별을 결심하게 된 걸까?

by 무한 2015. 11. 26.

선영씨, 잘 봐봐. 이 부분이 상대를 답답하게 만드는 부분이야. 선영씨는 신청서에

 

"제가, 제 옆에 누군가가 있었으면 좋겠다 싶은 마음에 재회를 바라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제 삶의 운전대를 대신 잡아줄 사람이 필요한 것도 아니에요. 관성 때문에 재회하려는 건 더더욱 아니에요. 그리고 전 다시 만나면 문제가 되었던 걸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어요."

 

라고 적었지? 저렇게 다 결론 내놓고 그 결론에 대한 답을 달라고 하면, 상대는 답답해질 수밖에 없어. 나야 사연을 하루 이틀 보는 게 아니니 선영씨가 무슨 얘기를 하든 다 이해할 수 있지만, 남자친구 입장에선 연애 중 여자친구가 저런 화법을 사용하면 답답할 수밖에 없어.

 

남친도 억울하고 답답한데, 남친의 억울함과 답답함에 대해서는 이야기 하지 못하고 선영씨가 말하는 것에만 따라가야 하는 게 또 답답한 거라고. 선영씨는 연애 중 발생한 다른 문제들이 다뤄질 거라 생각했을지 모르겠는데, 이게 가장 큰 문제니까 이것부터 보자고.

 

 

1. 내가 화냈던 것 이것 때문이다. 그리고 넌….

 

이렇게 가정해 봐. 내가 선영씨 남자친구야. 그런데 어제, 저녁 먹다가 뭔가에 기분이 상해서 난 그냥 들어가자고 했어. 난 선영씨를 바래다주지도 않았고, 집에 돌아가서도 연락하지 않았지. 선영씨는 몇 번이나 왜 그런 거냐고 물었는데, 난 대답하지 않았어. 그러고선 점심이 지나서야 아래와 같은 말을 했지.

 

"내가 어제 그냥 집에 들어가자고 했던 건, 모든 데이트의 책임이 나에게 있는 것 같아서였다. 너도 그쪽으로 오면서 알아볼 수 있었을 텐데, 그러진 않고 오자마자 우리 뭐 먹을 거냐고 묻는 것에 기분이 상했다. 그래서 말없이 있었던 건데, 이후 너도 별로 말을 하지 않았고, 돈가스 먹으러 가서도 음식이 나오기 전 폰을 만지작거리는 네 모습에 실망했다.

그리고 네가 '뭐 때문에 삐친 거야?'라고 물었을 때, 내 저런 큰 고민들이 너에게는 한낱 '삐친 것'처럼 여겨지는 것 같아 씁쓸했다. 그리고 이건 말 안 하려고 하다가 하는 건데, 전에 우리 삼청동 갔던 날 네가 발 아프다며 그냥 택시 타자고 했을 때…(중략). 어쨌든 나는 그냥 그래서 그랬던 거다."

 

얼핏 보면 '내 감정'에 대해 쌓아두지 않고 설명해 주는 것 같으니까 괜찮은 것 같지? 그런데 아니야. 저 '감정 전달'에 대한 부분 말고, 저 이야기를 하기 전까지 내가 입 꾹 닫고 남처럼 굴었던 걸 생각해 봐봐. 그게 바로 상대에겐 피로가 축적되는 부분이거든.

 

게다가 저 이야기는, 나쁘게 말하자면 '내가 피해자고 네가 가해자다'라는 이야기를 길게 풀어서 하는 것에 지나지 않잖아. 갈등이 생길 때마다 저래버리면, 상대 몸에 돌 생기는 거야. 상대도 화는 화대로 치미는데, 이후 '화해'라는 이름을 건 대화를 하다보면 또 결국

 

"미안해…."

 

라는 답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거든. 물론 대화에 익숙하며 자기표현에 뛰어난 사람이라면 저기서 화제를 바꿔 반론할 수 있겠지. 그런데 그렇게 반론을 잘 해봐야 겨우 '무승부'가 될 뿐이며, 둘 다 잘못한 걸로 합의를 본다 해도 마음속의 찜찜함과 내상은 한 번에 없어지거나 낫지 않거든.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이라면 앞서 말한 대로 '미안해'라고 사과하며 대화를 종결시키는 것 말고는 다른 대안도 없고 말이야.

 

난 언젠가 TV를 보다가, 그 왜 부모 자식 간에 생긴 갈등을 스튜디오에 나와서 푸는 그런 프로그램을 본 적 있거든. 그때 보니까, 엄마가 학교 선생님이야. 그래서인지 딸이 불만을 얘기하니까 그걸 조목조목 다 반박해. 평소 가정 모습 찍어온 걸 보여주는데, 집에서 아빠도 엄마한테 꼼짝 못 해. 그 엄마 멘트가

 

"그래 그럴 수 있어. 그런데 네가 안 그랬다면 엄마가 그랬겠어? 그리고 엄마가 그렇게 안 하면 넌 어떻게 할 건데? 그렇게 한다고? 그게 그렇게 해서 될 문제야?"

 

라는 식이었거든. 물론 선영씨는 저것보다 훨씬 부드럽고 완곡한 어조로 이야기하긴 해. 하지만 논리의 전개가 저것과 다르지 않은 까닭에 상대가 답답할 수 있다는 거야. 내가 속상하고 아프고 상처 받았던 것에 대해 이야기를 하려면, 상대도 속상할 수 있고, 아플 수 있고, 상처 받을 수 있다는 것도 생각해야지.

 

 

2. 날 여전히 좋아하는지 아닌지, 나는 안다?

 

우리끼리니까 하는 얘기지만, 거의 모든 남자는 연애할 때보다 썸을 탈 때 더 열정적이야. 썸을 탈 땐 보고 싶은 영화 뭐냐고 묻거나 아니면 무슨 영화 보고 싶냐고 물으며 약속 잡으려 하지? 그런데 사귀고 난 이후엔 그것처럼 열정적으로 들이대기 보다는 '영화 볼까?' 정도로 묻잖아.

 

취향에 대해 묻는 것도 마찬가지야. 썸을 탈 때에나 연애 초반엔 아직 서로에 대한 정보가 없으니, 무슨 노래 좋아하냐, 어떤 장르의 영화 좋아하냐, 어느 가수 좋아하냐, 전시회가 좋냐 음악회가 좋냐, 뭐 그런 거 묻곤 하잖아.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서로에 대해 어느 정도 알게 되면 그땐 '이걸 얘가 좋아하겠다, 아니다'라는 판단이 서게 돼. 그래서 대개 더 묻질 않게 되지.

 

"도시락에 비유하자면, 저는 오빠가 도시락을 싸왔다면 그 안에 뭐가 들었나 다 까보고, 또 먹어보고, 그 이후에 그걸 어떤 마음으로 쌌을까 생각도 해보고, 어떤 재료로 쌌는지도 확인해보고, 그것 외에도 여러 가지 시각에서 바라보며 온갖 주제에 대해 다 얘기했거든요. 그런데 오빠는, 제가 싸온 도시락을 그냥 한 번 바라보고는 마는 느낌이었어요. 예의상 한 두 입 먹어보는 느낌이요."

 

그건 그가 선영씨에게 관심이 없어서라기보다는, 선영씨가 섬세하고 예민한 타입이라고 보는 게 맞을 것 같아. 너무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이, 도시락은 그냥 도시락인 거라고 여길 필요도 있어. '왜 하필 그 색상의 도시락을 준비했을까'까지 파고 들어가는 건 좀 너무 깊게 들어가는 거야.

 

습관적으로 내 말에 일단 반론을 제기하고 싶지? 안 돼. 넣어둬. 난 못 꺼내게 할 거야. 위에서 도시락 얘기가 나왔으니, 난 둘의 카톡대화에 나온 유부초밥 얘기를 할게. 선영씨가 유부초밥으로 끼니를 두 번이나 해결했다고 말했을 때, 상대는 그랬냐고 말하고 다음 주제로 넘어갔지? 이때 선영씨는 왜 자신이 유부초밥으로 끼니를 두 번이나 해결했는지에 대해 상대가 물어봐주길 바랐을 수도 있어. 그런데 상대는 선영씨 집에 어머니 오셨냐는 물음으로 넘어갔지.

 

남자 입장에서 보자면, 그 대화는 전혀 이상하지 않아. 물론 완전 섬세하게 상대의 숨소리 하나까지도 다 골라 듣는 사람이라면 유부초밥 얘기를 꺼냈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보통의 남자는 늘 얘기하듯 '문제해결'을 위주로 대화한단 말이야.

 

ⓐ 밥 먹었는가 -> 유부초밥으로 해결했다고 함.

ⓑ 집에 가족들은 있는가 -> 어머니 오셨다고 함.

ⓒ 근무 중 이상 없는가 -> 근무 중 이상 무. 수고.

 

좀 더 세밀한 챙김이 필요한 거라면, 그땐 알아주길 바라고만 있는 것보다 말하는 게 나아.

 

[나쁜 사례]

"친구네 집에 가서 책 가져왔어."

(친구네 집이 먼데 거기까지 걸어가서 물건을 받아왔다는 의미 내포.)

 

[좋은 사례]

"책 완전 무거운데, 친구네 집 가는 차편도 없어서 걸어갔다 왔어."

 

영어 배울 때 거의 모든 선생님들이 그러지? 영어에선 중요하거나 강조하고 싶은 걸 앞으로 보낸다고. 바로 그걸 이용하는 거야. 중요한 걸 앞으로 보내. 그럼 상대도 눈치 채곤 물어봐 줄 거야. 맞추나 못 맞추나 평가하지 말고, 상대가 알 수 있게 힌트를 주라고. 연인이잖아. 그럼 서로 도와가며 잘 만들어야 하는 거야. 상대가 못 한다고 갈구기 전에, 잘 할 수 있게 도와줘.

 

 

3. 그 외의 이야기들.

 

이거 꼭 얘기해주고 싶었던 건데, 앞으론 누굴 다시 만나더라도 절대 이전 연애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마. 이전 연애가 아니라 얼마 전까지 타던 썸에 대해서도 말을 하지 마. 그리고 누군가에게 끌리는 시점이 오면, 그 전까지의 관계들은 스스로 정리해.

 

"전 그때 좀 이해가 안 갔어요. 썸 타는 사이일 뿐인데 너무 남자친구 역할을 하려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요."

 

썸남이랑 있는데 다른 썸남한테 연락오고 그러는 건, 좀 아닌 거야. 그리고 선영씨 아직 대학생이긴 하지만 성인이잖아. 그러면 본인이 결정하고 본인이 책임을 져야지. 내가 연락하라고 하는 거 아니고 그 사람이 연락하는 건 어쩔 수 없는 거다, 뭐 그런 식으로 나가버리면 안 되는 거야.

 

그리고 선영씨는 '솔직하게 다 말해버리자'고 생각해서 그런 걸 수 있는데, 현재의 상황을 모두 상대에게 이야기하고 상대에게도 조언을 받아가며 정리할 필요는 없어. 혼자서도 할 수 있는 거잖아. 선영씨가 어떤 남자랑 만나서 썸을 타는 중인데, 그 썸남에게 구여친이나 다른 썸녀가 연락을 해. 선영씨와 밥을 먹고 있는데도 연락이 오는 거야. 그래서 그것 때문에 좀 마음에 걸린다는 이야기를 했더니, 상대가

 

"얘는 너랑 만나기 전에 소개팅으로 알던 애다. 두 번 만난 뒤로 더 안 만나고 있는데, 계속 나에게 연락을 해온다. 나도 어떤 결정을 한 뒤 얘한테 이야기를 해줘야 할 것 같은데, 아직 내 마음이 어떤지 나도 확실히 모르겠다. 내가 어떻게 하는 게 현명한 거냐."

 

라는 얘기를 해. 그럼 선영씨는 저 말을 들으며

 

'이 사람 정말 솔직한 사람이구나. 거짓말로 인해 내가 힘들 일은 없겠어. 이 사람이 상황을 잘 해결할 수 있게 내가 도와줘야겠다.'

 

라는 생각을 하겠어, 아니면 그냥 듣자마자 정이 떨어지겠어? 누구라도 후자에 더 가까운 법이잖아. 내 생각엔 상대 역시 그때 좀 그랬을 거야. 하지만 그런 마음보다는 선영씨와 사귀고 싶은 마음이 더 컸으니까 계속 선영씨를 설득하려 했겠지. 얼른 정리했으면 좋겠다는 말을 하면서 말이야. 앞으로 누굴 다시 만난다면, 그땐 이렇게 '내 썸과 연애의 보따리'를 다 풀어 놓고 같이 구경하지 말고, 선영씨가 스스로 다 정리하고 마무리한 뒤 그런 보따리 없이 나갔으면 해.

 

그것 외에 하나 더 이야기 하자면, 이건 뭐 그간 매뉴얼들을 통해 정말 많이 이야기 한 건데,

 

"진지하게 얘기하기도 그렇고, 그렇다고 장난스럽게 넘기자니 그것도 안 돼서 좀 기분 나쁜 채로 있었거든요. 그랬더니 오빠도 좀 짜증내면서 왜 그러냐고 묻는데 전 그게 서운하기도 하고…."

"그 상황에서 전 그냥 저한테도 화가 났어요. 저 스스로가 너무 째째한 것 같아서 말하고 싶지도 않았는데, 여하튼 시간 지나면 괜찮아 질 수 있는 걸 오빠는 또 제게 왜 그러냐고 묻고…."

"저도 화가 나서 반대편 전철 타는 곳으로 그냥 가버렸거든요. 그런데 생각해보니 지금 그렇게 가면 그 주에는 못 보니까 연락을 했는데, 오빠는 이미 전철 탔다고 하더라고요. 그 소리를 들으니 갑자기 저도 의욕이 상실되기도 하고…. 그래서 알았으니 끊자고 했더니 오빠가 화를 냈어요."

 

저런 일을 본인이 저지를 때에는 잘 몰라. 그런데 당해보면, 정말 다 때려치우고 싶어지거든. 선영씨가 휙 돌아서 가버렸잖아. 그래놓곤 왜 가는데 안 잡냐고 하면 사람 미치는 거야. 생각해 봐봐. 상대는 선영씨가 그 사이 마음이 바뀌어 대화하려고 전화한 건지 아닌지 모르는 상태잖아. 그 상황에서 선영씨가 전화를 걸어 어디냐고 물어본 뒤 전철 탔다고 하니까 '알았어, 끊어.'라고 하면, 상대 입장에선 '지금 나 놀리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드는 거라고.

 

 

감정이 다 지나간 뒤, 그러니까 헤어진 지금은 선영씨도 저게 잘못한 일이라는 걸 알 수 있겠지. 그런데 선영씨가 이제 다 알았다고 해서 저게 없던 일이 될 수 있는 건 아니잖아. 그간 축적된 피로와 실망들 때문에 상대의 마음은 모두 조각났을 수 있고, 헤어지고 나니 오히려 편해서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을 수 있어. 그러니 '이제 다 아니 재회만 하면 다시 잘 할 자신 있다'고 말하는 건 그만두었으면 해.

 

"제가 사과를 했을 때, 오빠는 자기한테 미안해 할 필요가 없다고 했거든요. 그건 왜 그런 거죠? 미안해 할 필요가 없다고 하면서 왜 저랑 헤어지려 하는지, 다시 한 번의 기회도 안 주려 하는지가 궁금해요."

 

이별 후 대화를 하다가 남친이 "어차피 우린 헤어진 건데…."라는 이야기를 한 적 있지? 그게 답이야. 다 내려놓은 상황이니 하나하나 조목조목 짚어서 이야기 할 필요가 없는 거잖아. 그의 입장에서 보자면, 그냥 이대로 "미안해 할 필요 없다. 그렇게 미안해 할 일도 없다. 아무튼 우린 헤어진 거다."라고 얘기하고 접는 게 가장 스트레스를 덜 받는 선택이기도 하고 말이야.

 

만약 그가 하나하나 이야기를 하면 선영씨는 또 거기에 대한 사과를 하거나 변명을 할 거고, 선영씨 역시 속상하고 불만이 있었던 부분들에 대해 또 얘기를 하게 될 거야. 그는 그냥 그게 다 싫은 것 같아. 정말 선영씨가 잘못하거나 미안해 할 일이 없어서 그렇다고 말하는 게 아니라, 그냥 그렇게 끝내고 싶어서 그러는 거라고 나는 생각해. 그래서 재회를 바라고 있는 선영씨에겐 미안하지만, 이 관계에선 재회의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다는 대답을 해줘야 할 것 같아.

 

선영씨는 다른 매뉴얼들을 읽으며 '연애 없이도 확고하게 존재하는 내 생활과 목표'를 설정하고 매진하겠다고 했는데, 그러면 될 것 같아. 머리론 다 알아도 마음이 따라주질 않아서 얼마간 더 힘들 수 있는데, 난 선영씨가 그 시기를 잘 이겨냈으면 좋겠어. 다시 손을 써서라도 '좋은 마지막'을 만들려는 마음도 때론 욕심일 수 있는 거니까, 그것마저도 일단은 내려놓을 수 있길 바랄게. 어느 땐, 찢겨진 페이지는 그냥 찢겨진 대로 두는 게 좋을 수 있어. 거기에 집착하느라 다음 장으로 넘어가지 못하면 계속 힘들 수 있으니까, 다음 장으로 넘겨 이야기를 더 읽어가 보자고. 페이지 한 짱 찢겨졌다는 사실보다는, 책의 전체 내용이 더 중요한 거잖아.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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