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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완료)/솔로부대탈출매뉴얼(시즌5)

여자가 먼저 커피를 줬는데, 밥 먹자니 싫대요. 외 1편

by 무한 2015. 7. 4.

김형, 딱 봐봐. 상대는 그냥 여자가 아니라 커피숍에서 일하는 여자잖아. 커피숍에서 일하는 분이 다가와서 새로운 커피 한 번 마셔보라고 주는 건 뭐야? 김형은 그걸 '관심'이라고 받아들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걸 '시음 서비스'로 받아들이거든.

 

"그럼 그녀가, 밥 먹자는 제 제안을 거절한 후 태연하게 제 테이블 부근에 있는 건 뭐죠?"

 

거기 그 사람 직장이잖아. 김형은 손님인 까닭에 불편하면 안 가거나 창가 쪽에 앉아 밖을 바라볼 수 있겠지만, 그 사람은 일을 해야지. 김형 올 때마다 화장실에 숨거나 카운터 반대편으로 고개를 돌리고만 있을 수 없잖아. 그렇지 않아?

 

"저랑 자꾸 눈이 마주치고, 또 그녀는 저랑 눈이 마주친 이후 화장실에 다녀오며 묶었던 머리를 풀기도 했는데요?"

 

그렇게 그녀의 몸짓에 여러 의미를 부여하면서까지 관심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증거를 겨우겨우 찾아봐야 한다는 게, 김형이 이미 잘못된 길로 들어섰다는 증거야. 김형. 내가 4개월 동안 같은 커피숍 다니며 매번 같은 메뉴를 시키면, 내가 늘 샷 추가 아메리카노를 마신다는 걸 알 거야. 이걸 두고

 

"그녀가 제게, 아메리카노 샷 추가냐고 웃으며 말한 건 왜 때문이죠?"

 

라고 묻고 싶은 거라면, 난 그걸 '단골손님이 되었다는 증거'라고 대답할게. 단골 가게의 종업원이 내 취향을 파악했다고 해서 무조건 이성적인 관심은 아닌 거니까. 같은 질문을 남자직원이 했다면, 김형은 '저 직원이 나 좋아하나?'하며 잠 못 이룰 거야? 아니잖아.

 

 

1. 여자가 먼저 커피를 줬는데, 밥 먹자니 싫대요.

 

우선, 난 이 관계에 대해 좀 부정적으로 생각한다는 얘기를 먼저 할게. 김형이 그녀를 좋아하게 된 이유가,

 

'이 여자 분이 나에게 호감이 있는 것 같아서'

 

이기 때문이거든. 그래서 함께 밥 한 끼 하자는 이야기를 하려 기회만 엿봤고, 그 이야기만 전할 수 있으면 다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 올려 놓는 모양이 되리라 생각했지. 물론 그건 김형의 시원한 김칫국 드링킹이었고, 함께 밥을 먹자는 말에 그녀는 고개를 가로저었지만 말이야.

 

그렇게 한 번 퇴짜를 맞은 지금도, 뭐가 없긴 해. 그냥 꾸준히 계속 그 커피숍에 들르고 있고, 거기서 상대를 계속 관찰하며 '호감 있다는 증거'를 다시 한 번 찾아내려 노력 중이지. 그러다 그녀가 커피 리필을 해주겠다고 하면, 김형은 

 

"아…, 네. 감사합니다."

 

정도의 대답만을 할 뿐이고, 현실에서 딱 그 정도의 표현밖에 못 하는 것과 달리 속으로는

 

'나에게 관심이 없다면 왜 커피 리필을 해주겠는가? 그리고 눈도 계속 마주치는데, 이건 그녀도 나를 의식하고 있다는 것이며, 호감이 있다는 증거 아닐까?'

 

하며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지.

 

김형. 어제 난 새로운 물생활 동호회원분을 한 분 만나게 되었어. 우리 집 구피가 치어를 낳았는데 치어 먹이가 없어서 구하던 중에, 근처에 사시는 분께서 남는 게 있다며 주신다고 했거든. 그래서 뵙게 되었는데, 마침 그 분이 글을 쓰시는 분이라 우리는 길거리에 서서 한 시간 넘게 대화를 나눴지. 어디 들어가거나 그늘에라도 앉았어야 하는데, 잠깐 만나러 나갔다가 대화에 빠져들어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대화를 나눴어. 때문에 그분과 나는 오늘 저녁을 함께 먹는다고 해도 전혀 이상할 것 없는 사이가 되었지. 그런 대화 없이 내가 다짜고짜 저녁을 먹자고 했다면, 그 분은 나를 이상한 사람으로 생각하거나 당황스럽게 들이대는 모습에 벽을 세웠을 거야.

 

내가 김형이라면 상대에게 '시간 괜찮으면 밥 한 끼 같이 하자'는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 많은 대화를 나눴을 거야. 일단 상대가 커피숍에 있는 사람이니까, 왜 아이스커피가 따뜻한 커피보다 비싼지를 물어볼 수도 있는 거고, 자몽에이드 같은 건 직접 만드는 거냐고도 물어볼 수 있으며, 샷 추가를 트리플까지 해서 주문하는 사람이 있냐고도 물어볼 수 있겠지. 상대가 쉽게 대답할 수 있는 걸 물어보는 거야. 그렇게 말을 트고 난 후엔 집에서도 커피를 드시냐고 물어볼 수 있고, 나아가 쉽게 보기 힘든 커피 이름을 대며 그 커피를 마셔봤냐고 물어볼 수도 있겠지. 루왁? 같은 커피 말이야. 그런 얘기 나누다가 만약 상대가 고양이 좋아하면 루왁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여 고양이 얘기로 넘어갈 수도 있는 거고, 뭐 그렇게 가면 되는 거야.

 

상대 직장에서, 그것도 다른 직원과 손님들 있는 곳에서 다짜고짜 언제 한 번 밥 먹자고 말하는 건, 아무 것도 고려하지 않은 채 날 것 그대로의 생각만을 전달한 거잖아. 나눈 대화라곤 커피 주문할 때 커피 이름 말한 게 전부인데, 그런 상황에서 밥 먹자는 손님에게 덜컥 "네, 좋아요."라고 말하는 게 더 이상한 거 아닐까? 그러니 '처음 느낀 그대 눈빛은 혼자만의 오해였던가요….'하는 생각만 하며 재도전 하려 하지 말고, 김형이 이상하거나 나쁜 사람 아니라는 걸 상대가 알게 될 때까지, 대화부터 나눠봐.

 

 

2. 여자 후배 남친 생기기 전부터 제가 좋아했는데요.

 

안녕 형진씨. 노멀로그 애독자라면 내가 이런 사연은 다루지 않는다는 걸 잘 알 거야. 커플부대원을 갈라놓는 일 같은 건 돕지 않고 있거든. 하지만 형진씨의 심각한 문제를 그냥 두고 볼 순 없기에 이 글을 쓰는 거라는 걸, 미리 밝혀둘게.

 

군대에 간 어떤 독자 분이 이런 댓글을 단 적 있어.

 

"군대에 가기 전까진 제 외모가 평균 이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주변 사람들도 제게 평균 이상은 되는 거라고 말해주었고요. 하지만 군대에 가니 날 것 그대로의 평가를 해주더군요. 첫 날부터 고참들이 제 외모에 대한 평가를 해주었습니다. '야! 박휘순!' 이라고요. ㅎㅎㅎ"

 

그러니까 이게, 저렇게 혼자만의 세계가 종종 깨지는 시점이 필요하다고 나는 생각하거든. 그렇지 않으면 본인에 대해서는 본인이 상상하는 대로만 생각하게 될 수 있어. 남들에게 어떻게 보이는지에 대한 피드백은 받지 못한 채, 내가 '난 이러이러한 사람으로 보일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걸 그대로 믿어버리는 거지.

 

현실에서 타인과의 교류가 별로 없었기에 피드백을 받을 기회도 적었던 사람은, 만화나 영화, 소설 등에 나오는 캐릭터처럼 살려는 경향이 강하거든. 본인이 다른 사람들과 다른 모습을 가지고 있을 경우 그걸 '특별함'으로만 여기기도 하고, 남들과 잘 어울리지 못 하는 걸 남들의 수준이 떨어져서라고 생각한다든지, 아니면 대인관계를 홀로 시나리오 쓰듯이 맺기도 해. 극단적인 경우를 사례로 들자면,

 

"크으읔, 처음으로 여자 닝겐과 말을 섞게 되었군."

 

정도의 이야기를 현실에서 하는 친구들을 들 수 있을 거야. 아니면 지적 허영이 많이 심한 편이라

 

"난 소설 같은 게 맞지 않아서 말이야. 오늘은 라캉을 읽었는데, 이제야 숨통이 좀 트이는 것 같군."

 

따위의 이야기를 하는 친구들도 예로 들 수 있어. 저런 얘기 하는 사람을 보고 있으면, 솔직히 웃기거든. 근데 그렇게 살든 말든 나하고는 별 관심 없으니 그냥 "아, 네." 하고 놔두는 거지. 내 친구가 저런다면 "너 무슨 약 같은 거 하냐?"라며 진정시키겠지.

 

형진씨의 경우는 세 가지 문제가 있어.

 

ⓐ교양 부분에 '덕후'를 자처하며 특별해 보이려는 문제.

ⓑ"~더구나." "~하렴." 등의 말투를 사용하는 문제.

ⓒ계속 엄살을 떨어가며 상대의 관심을 유도하는 문제.

 

그리고 그 문제들은 다 심각한 수준에 이르러 있고 말이야. 어떻게든 특별한 사람으로 보이려는 노력 때문에 상대와 동등한 위치에서 대화를 나눌 수 없고, 겨우 한 살 차이임에도 불구하고 "~더구나.", "~하렴."의 말투를 사용하는 까닭에 아무래도 괴상해 보여.

 

상대 - 오빠, 혹시 아직 저 좋아하는 건 아니죠?

형진 - 내가 얘기했잖니. 네가 사귀는 사람이 있는 동안은 잠정적으로 마음 안 쓴다고.

 

내가 솔직히 얘기해 줄게. 상대는 형진씨와 사귈 마음이 없어. 미안하지만, 남친이랑 헤어져도 형신씨랑 만나지 않을 거야. 지금 형진씨의 연락을 어느 정도 받아주는 건, 형진씨가 계속 먹을 걸 사주고 이것 저것 도와주려 하기 때문이야. 상대가 몇 번이나 답장을 하지 않아도 형진씨는 계속해서 들이대고, 상대가 연락을 안 했으면 좋겠다거나 뭔갈 안 줘도 된다고 말해도 형진씨는 조공을 바치잖아. 그러니 '아는 오빠'로 둔 채 확실하게 끊지 않는 거지, 마음이 있어서 그러는 건 아니야.

 

상대에게 손톱만큼이라도 마음이 있다면, 형진씨가 엄살을 부릴 때마다 질문이라도 하나 했겠지. 수술한다고 했을 때 어떤 수술이냐, 어디가 아프냐 등의 질문이라도 했을 텐데, 상대는 "네네. 수술 잘 하세요."정도의 대답을 하는 게 전부였거든.

 

난 사실 지금 저 여자와의 관계를 걱정할 게 아니라, 형진씨의 다듬어지지 않은 모습을 걱정해야 하는 시점이라고 생각해. 계속 이대로라면 형진씨 연애에 끼어 있는 먹구름은 계속 그 자리에 머무르게 될 거야. 저 세 가지의 문제는 연애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문제가 되는 부분이니까, 합리화는 잠시 접어두고 정말 곰곰이 생각해 봐봐. 형진씨가 얼른 그 자기만의 세계를 깨고 나오길 나도 응원할게.

 

 

칠월부터 새로 받기로 한 사연이, 메일함 첫 페이지를 가득 채웠다. 칠월이 되기만을 기다렸던 분들이 많았던 것 같다. 그래서, 지금까지 도착한 사연만 일단 접수하고 7월 10일까지는 새 사연을 받지 않을까 한다. 그때까지 밤낮이나 주말 없이 최대한 많은 사연을 다루려 노력할 예정이니, 조금만 양해를 해주셨으면 한다. 자 그럼, 즐거운 주말 보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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