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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중)/연애오답노트

열정적인 연하남과의 연애, 그녀가 차인 이유는?

by 무한 2015. 2. 24.

외국인과 썸을 타는 사연을 보내실 때에는, 상대와 나눈 대화를 모두 한글로 해석해서 보내주셔야 한다. 언젠가 TV에 '타다이마'라는 일본어가 나왔는데, 개인적으로 쇄국정책을 펴고 있는 나는 그 뜻을 알 수 없었다.

 

내게 있어 모든 외국어는 평등하다. 그 말은, 일본어로 '타다이마'라는 게 '다녀왔습니다'라는 뜻인 걸 모르듯, 영어나 러시아어, 중국어 등으로도 '다녀왔습니다'를 뭐라고 하는지 모른다는 거다. 모든 외국어를 평등하게 대하기로 한 건 열네 살 때부터 지금까지 지켜온 온 소중한 내 신념이니 존중해 주시길 부탁드린다. 종종

 

"외국인인 상대와 대화를 하며 저도 대략적인 의미만을 이해할 뿐이라

해석해서 보내드릴 수가 없는데, 이런 경우엔 어떻게 해야 하나요?"

 

라는 질문을 해오시는 분이 있는데, 안타깝지만 단념하시라는 대답을 드리고 싶다는 건 훼이크고, 그 '대략적인 의미'만이라도 적어서 보내주시길 바란다.

 

영어의 경우, 사연에 영어가 쓰이는 걸 허용하는 경우는 3형식(주어+동사+목적어)까지 만이다. 그 외 간접목적어나 목적보어가 쓰인 사연은 여지없이 닫아 버리고 있으니, 참고하시길 권한다. 이렇게 적어 놓으면 주어나 보어, 목적어들에 절이나 구를 집어넣어 길게 보내려는 꼼수를 쓰려는 분들이 계신데, 그런 꼼수는 허용되지 않는다. 각 자리엔 하나의 단어만 사용되어야 한다. 이렇게 다시 고쳐서 보내는 게 더 힘드실 테니, 그냥 한글로 해석해 보내주시는 게 나을 것이다. 자 그럼 안내는 이쯤하고, 매뉴얼 출발해 보자.

 

 

1. 그건 도도한 게 아니라, 무뚝뚝하고 무관심한 거다.

 

노래방에 같이 갔을 땐 박수도 좀 쳐주고, 탬버린도 흔들어 줘야 기분이 나는 법 아닌가. 같이 간 사람이 팔짱끼고 앉아만 있고, 이쪽에서 노래하길 권해도

 

"그냥 너 불러."

 

라는 이야기를 하면 김이 빠지기 마련이다.

 

열정적이었던 연하남 남친이 S양에게 이별을 고한 건, S양이 바로 저 '팔짱끼고 앉아만 있는 사람'의 모습으로 연애를 했기 때문이다. 도도함? 카톡대화에서 S양의 남친은 저걸 '도도함'이라고 표현하던데, S양의 태도는 '도도함'이 아니라 '무관심'과 '무뚝뚝함'이다. 아래의 대화를 보자.

 

남자 - 퇴근하고 바로 그쪽으로 갈게. 오늘 좀 일찍 끝날 것 같아.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여자 - 초밥

남자 - 넵! 그 근처 초밥집 바로 검색하겠습니다! 나 초밥이랑 회 진짜 엄청 좋아하는데 ㅎ

여자 - 응

 

남자 - 얼굴 봐서 좋았어. ㅎ 앉아서 가는 중이야?

여자 - 응

남자 - 지금쯤 원당역 지나고 있겠네 ㅎ

여자 - 이제 곧

남자 - 그렇구나. 자긴 진짜 엄청 도도한 것 같아.

여자 - 내가?

남자 - 'ㅋ'라도 하나 붙여줬음 좋겠어. 너무 도도해서 숨 막히겠어 ㅋ

여자 - 그럼 더 좋은 거 아닌가ㅋ

여자 - 도도한 것도 매력인데ㅋ

남자 - 그렇다고 너무 'ㅋ'를 의무적으로 붙이진 말고 ㅎㅎ 뭐 그래도 좋다~

 

이랬는데도 만약 두 사람이 아직까지 안 헤어지고 사귀고 있다면, 그게 더 이상한 거다.

 

위와 같은 태도는, '나에게 관심을 보이며 들이대는 남자'와 만나 '100일 미만의 연애'를 하는 악순환을 불러올 수 있다. 대화를 하나 더 보자.

 

남자 - 뭔가 좀 찾고, 휴일에도 집에만 있지 말고 돌아다니고 해야겠어.

남자 - 요새 너무 집에만 있었더니 더 슬럼프에 빠지는 것 같아.

여자 - 그래

남자 - '그래'가 끝이야?

여자 - 응원할게

 

이게 '연인'인 사이에서 나온 대화가 아니라 '친구'사이에서 나온 대화라고 생각해 보자. S양이라면 위의 대화들에서 S양처럼 반응할 뿐인 친구와 계속 우정을 이어가고 싶겠는가? S양의 남친이 점점 S양보다 자신의 친구들을 더 가까이 한 건, 친구들과의 관계는 힘이 되지만 S양과의 관계는 힘이 들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남친만 인터뷰하듯 S양에게 물어야 하고, 또 엎드려야만 겨우 절을 받을 수 있는 관계. 이런 상황에서 S양은 또 나름대로 서운함을 표현한다며 '말 안 하기'로 복수하려 들었는데, 그 결과 둘은 15도 틀어진 선분처럼 달려 나가 점점 더 멀어지게 되었다.

 

상대에게 관심을 보이거나 표현을 하는 게 너무 어렵다면, 우선 'And you?'부터 활용하자. 상대가 "앉아서 가는 중이야?"라고 물었을 때, "응." 대신 "응. 자기는?"이라고 묻기만 해도 많은 것이 달라질 수 있다. 블랙홀처럼 상대가 보이는 관심과 표현을 혼자서 다 먹지 말고, 그걸 따라해 보는 연습부터 해보자.

 

 

2. 가까울수록 더 조심해야 하는데….

 

내가 일 년에 한 번 꼴로 인용하고 있는 영화 속 명대사가 있다. <봄날은 간다>에 나오는, 상우와 은수의 대화다.

 

상우 - 나 어디 좀 갔다 올게.

은수 - 빨리 와서 라면이나 끓여. 어?

상우 - 나 일 있어.

은수 - 무슨 일? 내가 모르는 일 있어? 또 어디 가서 술이나 마시려고 그러지 뭐.

상우 - 은수씨, 내가 라면으로 보여? 말조심해.

 

S양 커플의 카톡대화에서도, S양이 점점 긴장의 끈을 놓아버리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자라."

"말조심해라ㅋ"

"혼자 재잘재잘 설명도 잘 하네."

 

저건 그냥 장난치듯 한 말이라고 S양이 변명할 수도 있는데, 그 변명을 무색하게 만드는 대화가 카톡대화엔 또 등장한다. S양의 저런 말들에 기분이 상한 남친이 S양과 똑같은 태도로 말을 했는데, 그러자 S양이 발끈하는 대목이다.

 

남자 - 자라.

여자 - 자라??

 

'나는 되고, 너는 안 되고'가 아닌가. 더불어 S양은 평소에 남친과 말을 놓고 지내다가, 불만스러운 일이 있을 때는 자신이 '누나'임을 내세우려 들기도 한다. 이건 둘이 사귈 때, S양의 남친도 지적했던 부분이다.

 

"너는 자기방어적인 성향이 강해서,

그럴 의도로 한 게 아니더라도 공격적이고 상대방을 깔아뭉갤 때가 있어."

 

'침묵'도 상대에게는 형벌이 될 수 있다. S양은 기분이 나쁘거나 불만이 있을 때 저 '침묵의 형벌'을 상대에게 가했는데, 그럴 때마다 상대는 오들오들 떨며 사과를 했다. 그 형벌로 인해 상대는 오만 가지 생각을 하며 괴로워했는데, S양은 그가 괴로워하는 게 달콤하다는 듯 꿀잠을 잘고 일어나선

 

"어제 미안해."

 

라는 이야기를 하는 게 전부였다. 내가 S양 남친이었다면,

 

"근데 난 네가 대꾸도 없고 연락도 안 받으면,

정말 나쁜 상상들만 하게 되고, 조금씩 지치는 것 같아."

 

라고 말했을 텐데, 안타깝게도 S양의 남친은 저런 이야기를 하는 건 꿈도 꾸지 못 하는 상황에 있었다. 저 대화에서 그는

 

여자 - 어제 미안해.

남자 - 아니야.

남자 - 뭐 좀 먹었어?

여자 - 내가 뭐 말하는 줄 알고 아니래?

 

라는 '2차 형벌'을 당해야 하는 처지에 있었기 때문이다.

 

연애 중에는 어떤 상황에서든 '대화의 창구'를 열어 놓으라고 내가 권하는 이유가, 바로 저런 소모전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당장은 저런 태도를 보일 경우 상대가 완전히 '을'이 되어 꼬리를 내린 듯 보이겠지만, 그러는 동안 상대는 지치며 체념하게 된다. 헤어지기 직전 S양 커플이 나눈 대화를 보면, 거기서도 S양의 저런 태도가 발견된다.

 

남자 - 무슨 일 있었어?

남자 - 기분 왜 이렇게 다운 됐어?

남자 - 말해봐 봐.

여자 - 없어요.

남자 - 진짜야?

남자 - 알겠어 그럼.

남자 - 많이 피곤했나? 자나 보네.

남자 - 나도 좀 쉬어야겠다.

 

S양은 사귀는 동안 크게 한 번 싸운 걸 빼고는 싸운 적이 없다고 했는데, 저런 건 싸움보다 상대에게 더 큰 내상을 입히는 일이다. 학창시절 학교에서 선생님이 S양에게 "넌 그림 진짜 못 그린다. 이쪽엔 아예 소질이 없는 것 같다."라는 이야기를 했다면, 그건 분명 체벌이 아니지만 몽둥이로 맞는 것보다 더 큰 마음의 상처를 입힐 것 아닌가. 침묵과 무시는 정서적 폭력이라는 걸 잊지 말자.

 

 

3. 지극히 현실적인 이야기.

 

S양의 남친은 이십대 중반이다. 스무 살이 된 후 5년의 시간이 있었다고 치자. 그 중 2년은 대학을 다녔고, 2년은 군대에 있었다. 남은 건 1년이다. 1년 동안 그가 허리띠를 졸라매고 모았다고 해봐야 얼마나 모았겠으며,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한 직장인 월급이 많아봐야 얼마나 되겠는가?

 

그래도 S양 남친은 좀 나은 편이다. 내게 도착하는 사연을 보면, 요즘은 서른이 되어서야 겨우 '마이너스 인생'에서 벗어나는 남자들의 사례가 많다. 집에서 학비 다 대주고 용돈까지 주지 않는 이상, 대개 학자금 대출을 받아 학교를 마치곤, 취직해선 대출 받은 돈들을 갚아나가는 것이다. 이런 와중에 데이트 비용을 대고 결혼자금까지 모으려면, 적어도 삼십대 중반은 되어야 보증금이나 예식비용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지극히 현실적인 이 시각에서 S양 남친을 바라보면, 그가 감당하고 있을 엄청난 부담을 발견할 수 있다. 우선 그 집의 가장인 아버지께서 편찮으시니, 그가 버는 백오십 남짓의 돈에서 얼마쯤은 집으로 들어갈 것이다. 그 나머지 돈에서 개인적으로 소비해야 하는 얼마쯤을 빼고 나면, 최대한 넉넉하게 잡아도 칠십이 남는다. 그리고 S양의 귀향으로 장거리 연애를 하게 되고 나선, 남친이 S양을 만나러 오려면 고속버스를 타도 왕복 차비가 6만원, 그리고 내려가선 하루 숙박해야 하니 숙박비 4만원이 드는데, 이것만으로 다 해결되는 건 아니니 함께 만나서 먹는 밥 세 끼 중 한 끼 정도는 또 그가 사야 한다.

 

그렇게 잡으면 데이트 한 번에 12만원이다. 일주일에 한 번씩 한 달을 보면 48만원이다. 칠십에서 48을 빼면 22만원이 남는다. 아니, 이렇게 따지면 너무 빡빡한 것 같으니 이왕 쓰는 김에 좀 더 써서 한 달에 40씩 남는다고 치자. 일산 기준으로 투룸 전세금이 8000만원 정도 한다. 40씩 모아서 보증금을 마련하려면 200개월이 걸린다. 16년이다. 월급이 계속 올라 두 배씩 모으게 된다고 해도 8년이 걸린다. 마당 있는 집? 가구? 인테리어? 애완동물? 식기 깔맞춤? 그런 거 말고 투룸 보증금 마련에 8년인 것이다.

 

S양은 연애 중 그가

 

"이건 누나가 사주나?"

 

라는 농담을 해서 기분이 상한 적 있다고 했는데, 내가 보기에 그건 농담이 아니다. 부담에 짓눌려 질렀던 비명에 가깝다. 당장 귀향과 타 직종으로의 재취업으로 S양이 힘들었다는 건 알겠는데, 그렇다고 해서 그가 '상대적으로' S양보다 벌이가 나았던 거지, '절대적으로' S양보다 나았던 건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런 와중에 대부분의 데이트 비용을 그가 부담하려니 힘들었던 거다.

 

내가 괜히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다. 난 S양과 남친의 카톡화에서 수시로 그가 경제적 어려움을 호소하는 지점을 봤다. 대부분 간접적으로 한 표현이지만, 그 중엔 직접적으로

 

"이번 달 너무 힘들었어. 사실 금전적으로 내가 저금하는 것과

쓸 수 있는 금액이 있는데, 이번에는…."

 

이라고 표현한 부분도 있다.

 

내 생각엔, S양 남친의 마음이 부족해서 선물을 안 주거나 이벤트를 안 하거나 S양을 보러 안 오는 게 아니다. 난 PC통신 시절에 01410 대신 서울 국번으로 접속했다가 전화비 폭탄을 맞고는 소극적으로 변한 적 있다. S양의 남친도 나처럼 초반에 일단 뭣 모르고 저질렀다가, 경악스러운 통장 잔고를 확인하곤 조심스러워하게 된 거라 생각한다. 그러니 저걸 '나에 대한 마음이 줄었다'고만 해석할 게 아니라, 어떤 어려움으로 인해 소극적으로 변하게 되었는지도 한 번 돌아볼 필요가 있다. 

 

또, 이십대 중반의 남자와 이십대 후반의 남자의 씀씀이는 다를 수밖에 없다는 얘기도 해주고 싶다. S양 또래의 남자들이 돈을 쓰는 것과 연하인 S양 남친이 돈을 쓰는 것에는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이건 연하 남친을 둔 연상녀들이 종종 실수하는 부분인데, 연하인 그에겐 아직 충분한 시간과 기회와 여유가 없었다는 걸 기억해 두자. 부모님 차를 끌고 나와 부모님 돈을 쓰고 돌아다니는 게 아니라면, 사회 초년생인 그에게 S양의 기대를 만족시키는 일은 분명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난 이걸 S양이 일찍 깨닫고 그와의 연애에서 소소한 기쁨을 더 느꼈으면 했는데, 안타깝게도 S양은 위에서 말했듯 불만이 쌓이면 대화의 창구를 전부 닫아버리는 형벌을 그에게 내렸다. 그런 일들이 반복되는 동안 그는 완전히 지쳐버렸고, 이제는 S양이 울며 매달려도 그가 고개를 젓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S양은 남친에게 '이별 후 깨닫게 된 것들'에 대해 이야기 하며 사과만이라도 하고 싶다고 했는데, 거기엔 나도 찬성한다. 아무 것도 바라지 않은 채 미안한 마음을 전달하는 건, 그에게 힘이 될 뿐만 아니라 S양에 대한 그의 기억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다. 하지만 S양은

 

"가서 매달리면 받아주겠다는 답만 있어도 당장 서울에 올라갈 텐데, 그게 아닙니다."

 

라는 이야기도 함께 하고 있기에, 이쯤 되면 '사과만이라도 하고 싶다'는 말은 훼이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저 말처럼 정말 S양이 '되면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거라면, S양의 태도는 이별 후에도 여전히 이기적으로 굴며 얄팍한 처세로 흥정을 하려는 것이 되고 만다. 흥정을 위한 사과라면, 하지 말길 난 권하고 싶다. 이번 글은 이쯤에서 끝내기로 하고.

 

어제 치과를 갔더니, 통증이 있는 상태에서는 사랑니 발치를 안 하는 게 좋다고 해서 그냥 왔다. 난 연휴 때와 같은 통증은 두 번 다시 겪고 싶지 않기에 그래도 빼줄 수 없냐고 요청했지만, 지금 빼면 연휴 때의 통증보다 더 극심한 통증이 찾아올 수 있다고 해서 발걸음을 돌렸다. 처방해 준 약을 먹으면 염증도 가라앉고 통증도 사라질 거라 했는데 여전히 아프다. 흔들리면 집에서라도 혼자 뽑아 보겠는데 잡고 흔들어 봐도 꿈쩍도 하지 않는다. 괜히 건드려서 지금 더 아프다. 독자 분들은 이런 끔찍한 치통 겪지 않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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