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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매뉴얼(연재완료)/솔로부대탈출매뉴얼(시즌3)

모태솔로남과 모태솔로녀의 안타까운 소개팅

by 무한 2013. 1. 15.
모태솔로남과 모태솔로녀의 안타까운 소개팅
오늘은 한 대원이 보낸 사연을 가지고, 시간의 순서대로 그 이야기에서 발견되는 문제점들을 함께 살펴보도록 하자. 남자는 30대 초반, 여자는 20대 후반이며 둘은 여자의 친척(남자는 친척이 다니는 회사의 사장 아들) 소개로 만나게 되었다. 둘 다 연애경험은 없다.  


1. 폭풍같은 첫 연락


여자의 번호를 받은 남자가 연락을 한다.

남자 - 안녕하세요. 소개 받은 이춘규라고 합니다.
여자 - 네, 안녕하세요.
남자 - 금요일에 시간 괜찮으세요?
여자 - 내일이요?
남자 - 예.
여자 - 네 괜찮아요.
남자 - 그럼 제가 장소를 정해도 괜찮을까요?
여자 - 네.
(잠시 후)
남자 - 강남역 XXXXX에 6시 예약했습니다. 그때 뵙겠습니다.
여자 - 네, 어딘지 찾아봐야겠네요. 근데 XXXXX 안에서 뵙는 건가요?
남자 - 예, 그 안으로 오시면 됩니다.



정공법이다. 군대스타일이라고 할까. 연락의 목적이 '약속 잡는 것'이니, 남자는 용건만 간단히 말하지 않으면 못 견디겠다는 듯 딱 자기 할 말만 한다.

저런 형태의 대화가 뭔가 쿨해 보이며, 보통 사람들과 달리 주절거림으로 낭비하지 않는 진보적인 대화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내 지인 중에도 저런 식의 대화법을 구사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는 스스로를 대단한 인물이라 생각하며 어마어마한 크기의 근자감(근거 없는 자신감)을 가지고 있다. 전문직에 종사하며 30대 정규직 평균 연봉의 네 배쯤 되는 돈을 버는 사람인데, 그렇게 굴어도 주변에선 그에게 굽신굽신하며 도움을 요청하는 일이 많으니, 그에겐 자신의 문제를 돌아볼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2. 반전
  

어쨌든 둘은 만났다. 여자가 15분 정도 일찍 도착해 먼저 들어가 있어도 되는지를 물었는데, 남자는 이미 와서 예약석에 앉아 있었다. 그렇게 '약속시간'에 대한 이야기부터 둘의 대화가 시작되었다.

[식사 전 대화]
남자 - 그렇게 일찍 도착한 거 지연씨가 처음이에요.
여자 - 아, 네….
남자 - 예전에 제가 소개팅 했을 땐, 여자가 10분 넘게 늦어서 그냥 가 버린 적도 있어요.
여자 - 네….


[식사 중 대화]
남자 - 전 XX대학을 나왔고, XX과정을 밟았고, 집은 어디에 있고, 따로 오피스텔도….
여자 - 아, 네….
남자 - 좀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이런 거 솔직히 궁금해 하는 부분이잖아요. 
          그래서 누구한테 물어보고 뭐하고 하는 것보다 딱 터놓고 말하는 게 나은 것 같아요.
여자 - 네. 저는 XX대학을 나왔고, XX과정을 밟았고, 해외에서….



대화 중반 이후 여자에겐 남자에 대한 호감이 생긴다. 우리끼리니까 하는 얘기지만, 그 호감은 일종의 반발작용으로 생긴 호감이다. 남자의 연락하는 태도나 첫인상이 모두 안 좋았기에 여자는 그저 '주선자를 생각해 만나서 밥은 먹었다.'는 흔적이나 남겨두려고 나간 자리였다. 그런데 막상 대화를 계속 나누다 보니 남자가 호감을 표시해 오는 게 설레기도 하고, 멋대로 구는 모습이 박력으로 보이기도 한 것이다. 기대를 전혀 하지 않고 나간 자리라 실망할 일도 전혀 없었다. 

여자가 남자의 친절에 익숙하지 않은 까닭에 '에티켓' 정도의 일을 '나에 대한 관심의 표현'으로 받아들인 부분도 있었다. 그녀는 남자가 외투를 벗어 준 것이나 집에 데려다 준 것(집에 도착해서도 한참 차 안에서 대화한 것) 등에 큰 의미를 부여한다. 이걸 또 친구들에게 이야기하는데, 당연히 "야, 그것만 가지고 관심 있다고 보긴 좀 그렇지 않아?"라고 말할 친구는 없지 않은가.

"그 남자가 너 진짜 마음에 들었나 보다."


라고 말할 뿐이다. 그래서 그녀는 그를 잡아야겠다고 생각한다.


3. 동상이몽


이게 가장 결정적인 부분이다. 스마트폰 시세를 알아보러 매장에 들어간 나와 폰을 팔려는 직원 같은 관계라고 할까. 나는 새로운 폰의 기능들이나 요즘 할부원금이 얼마나 되는지를 묻는다. 직원은 내가 구매의사가 있어서 묻는 줄 알고 성실하게 대답한다.

"이 폰, 62요금제 쓰면 공짜라고요?"


내가 질문을 하자 직원은 '드디어 이걸로 마음 굳혔나 보군.'이라고 생각하며 보호필름과 케이스까지 무료로 주겠다는 얘기를 한다. 물론 난 구입을 목적으로 들어간 것이 아니기에 설명만 듣고 나올 뿐이다. 직원이 생각한다.

'내가 뭘 잘못한 거지? 젤리 케이스 말고 가죽 케이스 준다고 할 걸 그랬나?'


사연을 보낸 여성대원 역시 비슷한 질문을 내게 한다.

"제가 뭘 잘못한 거죠? 벽을 너무 친 까닭에 오빠가 다가오지 못한 건가요?"


미안하지만 잘못해서 그런 게 아니라, 서로 둘의 관계를 다르게 생각해서 그런 것이다. 이쪽에선 이 관계를 정상적인 '연애 전 탐색기'로 생각한 반면, 상대는 그저 '호의를 베풀어 나에게 매달리게 된 관계'라고 생각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두고 생각하면 상대의 모든 행동이 맞아 떨어진다.

"바빠. 바빠. 바빠. 바빠. 진짜 바쁜 와중에도 이렇게 전화 한 거야."
"나 안 보고 싶었어?"
"오빠 좀 한가해지면 겨울바다 보여줄게. 좋아?"



전형적인 '팬클럽 모집'의 태도다. 이건 딱 3주 정도만 지켜봐도 답이 나온다. 저런 태도를 취하는 남자들은 하는 말의 8할 정도가 '빈말'이기 때문이다.

"바빠서 만나자는 말도 못하고, 정말 미안해.
아직 일이 좀 남아 있긴 한데…. 나도 도망가 버리고 싶다.
우리 오늘 밤에 정동진 갔다가 아침에 해 뜨는 거 보고 돌아올까?"



가자고 답해 보길 바란다. 저건 어차피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일단 꺼낸 것이기 때문에, 103.2%의 확률(응?)로 파토가 난다. 급한 일이 생겼다든지, 차에 시동이 안 걸린다든지, 뭐 다양한 핑계로 요리조리 빠져나갈 것이다. 대개의 경우엔 여자가 "아냐. 오빠 바쁜 일 다 끝내고 가자."라고 대답할 것이기에, 빈말을 마음 놓고 막 던지는 거다. 사연을 보낸 대원에게도 비슷한 일이 있었잖은가.

"아 미안해. 정말 가려고 했었는데…."


그간 했던 말 다 지켰으면 벌써 전국일주 반은 했겠다. 나중에 해남이 어쩌고, 나중에 부산이 어쩌고, 나중에 소쇄원이 어쩌고. 나중에? 그러니까 그 '나중에'는 대체 언제일까? 


4. 너구리는 연기로 잡아야 하건만


노루는 쫓아서 잡아야 하지만, 굴로 숨는 너구리는 연기를 피워 잡아야 한다. 이 사실을 아는 여자들은 사연 속 남자와 비슷한 사람을 만났을 경우 상태를 애태우는 전략을 사용한다. 사연을 보낸 대원처럼

"친구가 소개팅을 해 주겠다고 연락이 와서, 오빠 만나는 중이라고 얘기 했어요…."


라는 식으로 '마음을 온전히 쏟고 있는 이 한 몸 받아 주십사.' 하지 않는단 얘기다. 또 다가가야 할 때와 물러서야 할 때를 아는 까닭에, 멀찍이 서서 바라만 보지도 않는다.

"감기가 너무 심해서, 주사 맞고 하루 종일 누워 있었어.
미안해. 좀 더 자고 일어나서 연락할게."



라는 이야기를 상대가 하면, 그녀들은 "얼른 나아요."정도의 얘기만 하고 그냥 내버려 두진 않을 것이다. 그런데 사연을 보낸 대원은 모태솔로인 까닭에 그를 방치할 뿐만 아니라,

"그런데 연락하겠다던 오빠가, 다음 날 아침까지도 전화를 안 하더라고요."


라는 이야기만 한다. 모태솔로녀들의 특징이다. 사연을 보낸 대원은 '오빠에게 너무 빠진 것 같다'고 말하면서, 정작 상대에게 베풀어야 할 호의나 관심은 베풀지 않는다. 애달파 하거나, 연락을 기다리거나, 이런저런 떠보기를 사용해 상대의 마음을 알려고 하지만, 막상 상대를 위한다는 걸 행동으로 보여줘야 하는 시점에선 그냥 멍하니 있다. 그대를 정말 만나고 싶어 하는 친구가 있다고 해보자. 그 친구에게 연락이 왔기에 아프다고 답한 후 몸이 좀 나아지면 다시 연락하겠다고 말했다. 그런데 다음 날, 그 친구는 다시 연락을 해

"몸이 나으면 연락 한다더니, 왜 연락 안 한 거야?"


라고 말한다. 저런 태도를 보이는 친구에게 애정이 생기겠는가? 그간 친해지고 싶다고 했던 저 친구의 말이, 참 가볍게 느껴지지 않겠는가?

꼭 무슨 전략 같은 걸 사용하거나 마음을 애써 돌려먹지 않더라도, 상대를 진심으로 생각하는 마음을 보여줬다면 이 관계는 정상궤도로 올라올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손익을 따지지 않고 '사람 대 사람'으로 애정을 갖고 대하면, 아직 모난 부분이 많아 '면접관 행세'를 하는 상대가 뉘우쳤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아직 부족한 상대와 마찬가지로 이쪽 역시 연애의 콩고물에만 관심이 두었던 까닭에 둘은 틀어져 버리고 말았다. 이제 다음 사람을 만나더라도, '연애'보다는 '상대'에게 더 관심을 두길 권한다.


사연을 보낸 대원은 묻는다.

"지금은 일주일 째 연락 없이 흐지부지 된 상태에요….
얼마 안 있으면 그 오빠 생일인데, 생일축하를 구실로 연락을 해 볼까요?"



내가 그 상황에 처해 있다면, 생일까지 기다리지 않더라도 연락은 별 걱정 없이 할 것이다. 이건 시즌 28(28세)에 찾아온 에피소드와 같다. 남의 이야기 바라보듯 멀리서 구경만 할 필요는 없다. 모자라면 모자란 대로 그렇게 부대끼다 보면, 시즌29에서는 이 관계가 긍정적으로 변할 수 있다. 깨박 나더라도 배우고, 느끼고, 또 마음에 남는 것들이 있을 것이고 말이다.

개인적으로 이번 사연에선, '처음 하는 연애니까 실수 없이, 또 한 번에 결혼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매끄럽게 해야 해.'라는 대원의 다짐이 스스로에게 큰 방해물로 적용했다고 생각한다. 결혼이라는 대의를 위해 따져야 할 것들도 참고, 또 상대의 판정에 둘의 관계를 맡기고 있으니, 평소만큼의 판단력도 발휘하지 못한다. 그저 면접관 태도를 유지하는 상대에게 딱 맞춰 면접자의 태도만 취하게 되는 것이다. 그저 좋은 상대에게 좋은 평가만을 받으려만 하는.

친구가 짜증나게 굴면 그 짜증나는 점에 대해 따지기도 하며 만나듯, 그렇게 만나보길 권한다. 지금처럼 '오빠의 마음에 들어야해.'라는 생각으로 만나면 나중에 휘두르는 대로 휘둘리는 관계가 될 수 있다. 빈말만 던지다간 아웃당할 수 있다는 것도 알려주고, 집중하지 않으면 이쪽도 날아가 버릴 수 있다는 걸 보여주면서 만나보자. 아, 자기 유학생활 얘기만 길게 늘어놓으면 하품도 좀 해줘가면서!



▲ 이래봬도 매뉴얼이, 햇수로 5년차 입니다. 실명노출 하지 않습니다. 걱정 마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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